양말을 신다가 알게 된 것

by 제이

인생 처음 허리 통증을 겪었다.
새로운 테니스 모임에 들어가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120퍼센트를 쏟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첫날은 단순한 근육통인 줄 알았다.
운동을 세게 한 다음 날이면 늘 겪는, 그 정도의 뻐근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이 달랐다.


옷을 입으려고 다리를 들어 올릴 때,
양말을 신으려고 허리를 숙일 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고 몸을 틀 때마다
허리 아래쪽이 콕콕 쑤셨다.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일상적인 동작들.
옷을 입고, 화장실을 가고, 의자에 앉고, 계단을 오르는 일.
그 기본적인 움직임마다 통증이 따라붙으니
괜히 숨을 고르게 되고,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더 들어갔다.


한 일은 별로 없는데 하루가 끝나면 기진맥진이다.
이렇게 피곤할 일인가 싶은데,
벌써 삼일째다.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일기를 쓴다고 한다.
감사할 일을 세 가지씩 적다 보면 삶이 달라진다고.


그 말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고개는 끄덕인다.


그런데 허리가 콕콕 쑤시던 그 밤에는
솔직히 감사 같은 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왜 하필 나야.’
‘왜 이렇게 아파.’
‘괜히 잘해보겠다고 설쳤지.’

이런 생각만 맴돌았다.


양말 하나 신으려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데
숨이 멎을 것처럼 찌릿하면
그 순간엔 깨달음도 성장도 필요 없다.
그냥 안 아프고 싶다.
내일 아침엔 멀쩡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긴장해야 하고,
차에 탈 때마다 각도를 계산해야 하고,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피곤한 일인지 몰랐다.


한 일은 별로 없는데 괜히 억울하다.
열심히 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싶은 마음.

“이런 고통도 겪어봐야 감사할 줄 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다가도,
정작 아플 때는 전혀 와닿지 않는다.
고통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 전에
먼저 속을 좁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심코 양말을 신다가 문득 멈췄다.

어? 덜 아프네.

그 순간은 거창하지 않았다.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편했다.

그리고 그 ‘조금’이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늘 괜찮은 몸을 기본값으로 깔아두고 산다.
걷는 것, 앉는 것, 돌아눕는 것.
그 조건이 깨지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나 큰 전제였는지 모른다.


나는 아마 또 잊을 것이다.
허리가 완전히 낫고 나면
다시 120퍼센트로 움직이고,
다시 무리하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겠지.


그래도 이번에는,
아프면 멈춰야 한다는 신호를
조금은 덜 무시할 것 같다.


감사는 대단한 깨달음 끝에 오는 게 아니라
통증이 한 뼘 물러난 자리에서
마지못해 따라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마지못한 감사 정도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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