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대학에 보내면 나는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가 살게 될 줄 알았다.
오랫동안 타지에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편한 곳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결정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다가도 ‘그래도 아이는 여기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내 고향 한국이지만, 오래 해외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그 익숙한 흐름을 다시 따라갈 수 있을지 선뜻 확신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나는 그 관계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꼭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느라 바쁠 때는 선택지가 없어서 오히려 결정이 쉬웠다.
학교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생활을 꾸려가다 보면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그때는 자유가 없다고 느꼈는데,
돌이켜 보면 그래서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결정할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어디에서 살지,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할지
정말 내가 정하면 되는 일들뿐인데,
이상하게 그 결정들이 더 어렵다.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선택이 많아질수록
그 결과까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얻은 순간에도
이상하게 더 조심스러워지는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사실이,
길이 넓어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쉽게 정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