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나는 3월과 4월의 날씨를 가장 좋아한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몸이 편안해지는 온도다.
1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비와 흐린 날씨 속에서
사람도 자연도 조금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꽃이 피기 시작하고
산이 다시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새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젊었을 때는 이런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늘 해야 할 일들에 쫓기듯 살았다.
해가 지는지,
꽃이 피는지,
나무의 색이 바뀌는지
볼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가끔 눈에 들어와도
‘꽃이 피었나 보다.’
‘나무가 있네.’
그 정도의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그냥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이상할 만큼 세세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자라고
일의 중심에서 조금씩 비켜나고
삶의 큰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사람은 비로소 주변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때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이렇게 넓었나 싶고,
같은 길을 수년째 다녔는데
그 길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나 싶다.
예전에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을 풍경들인데
왜 이제야 보일까 생각해 본다.
아마 자연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속도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늘 앞을 보며 살았다.
다음 일정, 다음 목표, 다음 해야 할 일들.
머릿속이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면
눈앞의 풍경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조금씩 생긴다.
그때 사람은 처음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나무가 짙어지고
가을에 잎이 떨어지고
겨울에 가지가 비어 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이 계절을 건너가는 방식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꽃이 피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면
요즘은 꽃이 지는 모습도 오래 바라보게 된다.
다시 피어날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조용히 삶의 속도를 알려준다.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을 텐데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속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