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걸까”

by 제이

아침에 눈을 뜨면 거의 같은 순서로 하루가 시작된다.
식탁에 앉으면 먼저 일어난 남편이 커피와 땅콩잼을 바른 빵을 준비하고, 계란을 삶는다.
나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고, 남편이 회사에 가져갈 간식을 챙긴다.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그렇게 준비한다.


장 보러 가는 길도 늘 비슷하다.
어느 신호에서 멈추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고,
마트에 들어가면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가는 물건들이 있다.
고르기보다 집어 든다는 표현이 더 맞을 만큼 익숙한 선택들이다.


그렇게 계산대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게 된 걸까.


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장을 보러 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들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몰라 한참을 서성였고,
이름조차 낯선 물건들을 하나씩 검색해 가며 알아내야 했다.
번거롭고 서툴렀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걸 알게 됐다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모른다는 건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은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낯선 것들 속에서 허둥대던 시간은 분명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늘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알게 되고,
작은 일 하나가 익숙해질 때마다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능숙해졌다.
어디에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알고,
매일 일어나는 기본적인 일들에 어떤 선택을 하면 되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하루에 일어나는 결정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꽤나 확신도 있고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한다고 느낀다.
생활은 편안해졌고, 하루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런데 문득,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익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삶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하루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태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
나는 가끔 아주 작은 질문과 마주한다.

이 편안함이 나를 쉬게 하는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하는 걸까.


익숙함은 분명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낯섦만으로는 삶을 오래 이어갈 수 없으니까.
우리는 결국 익숙한 것들 속에서 안정을 얻고,
그 안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회복한다.


그래서 익숙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안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는 일까지 함께 줄어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가끔 일부러 주변을 천천히 바라본다.
늘 가던 길에서도 처음 보는 것처럼 시선을 멈춰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던 일들에 작은 변화를 주어 보기도 한다.


대단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익숙함은 안정일 수도 있고,
어떤 순간에는 포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 그 둘은 분명하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본다.
나는 지금 충분히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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