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구는 다양한 동물 - 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이들과 활달한 상호작용을 하며 생태계를 구성한다. 생명이란 호흡을 하는 존재다. 코끼리도 사람도 강아지도 개미도 미생물도, 모두 살아있는 존재란 공통점을 가진다. 하나, 살아있다 해서 이들을 동일선상에 두어선 아니 될 것이다. 미생물과 코끼리 중 어느 개체가 상대적으로 고등한 존재인지 묻는다면 답은 금방 나온다. 미생물은 생물이지만, 오직 생존 의사만이 존재한다. 이에 반해 코끼리는 생존 의사와 더불어, 암컷을 찾아 사랑을 하고 새끼를 양육하고 우호적 개체와 적대적 개체를 구분 가능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코끼리와 사람을 비교했을 땐 어떤가? 사람도 생존하거니와 나와 다른 성별의 짝을 찾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우호적, 적대적 관계를 구분 짓는다.
생태계의 구조에서 고등 개체들은 공통적으로 하위 개체에 비해 높은 지능을 가졌으며, 물리적 공격으로부터 방어 가능한 구조를 지녔다. 사자의 경우 무리라는 공동체를 구성할 지능과 사냥이나 외부의 공격을 방어할 앞니와 발톱이라는 무기도 갖췄다. 하지만 고등 개체인 사람은 높은 지능은 갖췄으나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식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물리적인 힘은 빈약하다. 동물들의 위협이 전연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달리, 과거의 인류는 이 위협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원시 인류가 야생에서 절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이족보행'이라 지적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두 발로 걸었기에, 남은 두 손을 쓸 수 있었고 이 손으로 도구를 개발하거나 자연으로 보호 가능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인류가 애초부터 고지능을 갖춘 존재였다기 보단, 손의 활용을 통해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등의 창작 행위로 인해 발전되었다고 주장한다.
손은 곧 인류의 말과도 연결되는데, 바로 문자다. 문자란, 인간의 언어를 적는 데 사용하는 시각적 기호체계다. 최초의 문자 기록물인 쐐기문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다. 갈대나 깃털의 끝 같은 뾰족한 것으로 추측되는 펜으로 하여금 진흙에다 물고기, 노예 같은 정보가 기록되어있다. 이 말인즉슨, 말이라고 하는 형태가 없던 것이 어떤 기록물로 전이되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문자의 사용은 정보의 기록에만 국한되었던 게 아닌, 이야기를 전하는데도 사용된다. 최초의 이야기라고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가 이러하다.
이야기는 말을 전달하는 화자와 이를 듣는 청자 그리고 매개체인 매체로 구성되어있다. 화자는 자신의 말을 매체에 기록하고, 청자는 이 매체를 통해 화자와 간접적으로 접촉한다. 초기의 이야기는 주로 신화적 내용이었다. 신화는 화자가 전달하고픈 주제를 청자에게 전달하고 끝나는 단방향의 형태다. 권선징악의 구조가 많으며 ~한 죄를 지으면 ~한 엄벌을 받을 거란 일종의 공포를 심어주어 사회적 안녕을 바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세계관은 신 중심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으로 변모하며 철학과 이야기 또한 신화적 내용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해야 해, 같은 강압적이고 교훈적인 주제가 아닌, 인간의 어떤 대상에 대한 사유가 주제가 되었다. 르네상스 이전, 빵을 소재로 이야기를 직조한다면 아마도 남의 빵을 훔치면 처벌을 받으니 훔쳐선 아니 된다는 것과 같은 교훈적 내용이거나 빵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추앙적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론, 화자의 빵에 대한 사유를 전달하는데 그쳤다. 그렇다면 청자의 변화는 어땠을까. 청자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사유와 자신의 사유를 공감, 비교하며 이야기를 긍정 혹은 부정했다. 이제 청자는 매체를 통해 화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과 결부하여 작품에 대한 평을 남기며 간접적으로 화자와 소통하기에 이르렀다. 매체 또한 이에 맞춰 발전했다. 초기의 매체는 진흙이나, 돌이나 종이에 새겨진 문자의 형태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서도 전달되었다.
그림에서 밝은 이야기는 밝은 색조와 인물들의 해맑은 표정을 통해 전달하지만, 어두운 이야기는 어두운 색채와 관객(청자)들이 느끼기에 괴기스러운 인물과 구조를 가진다.
위 그림은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뮬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란 작품이다. 19세기의 프랑스 파리는 현대 도시로의 선봉이었다. 당시 파리는 좁은 도로와 낡은 뒷골목, 난립한 가로등 등의 구시대적 도시 산물을 밀어내고 큰 도로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 그리고 질서 있게 배치된 가로등으로 탈바꿈하며 현대 도시의 모습를 띠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무도회는 더 이상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일반 시민들도 양껏 누릴 수 있게 되어, 시민들은 휴일이 되면 도시의 공터에 모여 춤을 추곤 했다. 맘껏 여유로워도 되는 휴일, 온온한 오후의 햇살 아래 공터에 모여든 시민들은 음악에 맞춰 사랑하는 사람과 발을 맞춘다. 밝은 색채와 행복해 보이는 인물들, 화자가 그림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일상의 행복이다. 당시의 관객들은 자신들이 무도회에서 춤췄던 경험을 떠올리며 위 그림을 감상했을 것이다.
반면 이 그림은 어떤가? 이 작품은 러시아 화가 일리아 레핀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란 작품이다. 이반 4세는 본래 성품이 너그럽고 유능한 황제였지만, 아내가 죽고 나서 흉포한 인물로 변해갔다. 아내의 죽음 이후 오랜 정신병을 앓았던 그는, 말년에 가선 며느리를 유산하게 하고 아들을 몽둥이로 패 죽이는데 이른다. 이 작품은 작가가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여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반 사세의 회환과 공포를 어두운 색채와 섬찟한 표정을 통해 나타냈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난폭한 행동의 종지부를 목도하고 치를 떨거나 겁에 질렸을 것이다.
미술이 색감과 구조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음악은 음계와 가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음계란 일정한 순서로 음계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밝은 분위기의 장조(장음계), 어두운 분위기의 단조(단음계)가 그러하다. 우선 C장조는 C D E F G A B C(도레미파솔라시도)의 온음-온음-온음-반음-온음-온음-반음-온음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3도(미) 6도(라) 7도(시)를 반음 내리면 C단조(내추럴 마이너)가 된다. 이를 역이용하여 장조로 어두운 내용을 전달하여 곡의 이질감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마이너 곡임에도 희망적인 내용을 담아 청자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단조와 장조는 미술의 물감 같은 역할이지, '장조는 항상 밝은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절대 원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러두고 싶다.
단편 소설이 발단-전개-절정-결말의 구조를 가지듯, 음악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소설의 발단이 되는 Intro- 전개가 되는 verse - 절정이 되는 Chorus - 결말이 되는 Outro. 작사가들은 이 단계를 고려해 Verse로 전개를 한 다음 하이라이트인 주제를 후렴에다 넣는다. 곡의 구성이 주제와 부합되면 상생효과를 나타내기에 작곡과 작사의 활발한 소통을 필요로 한다.
청자들은 우선 음악의 선율을 느끼고 나서 가사를 돌아본다. 마치 미술을 관람할 때, 우선 색조와 색감을 느끼고 구조를 파악하듯이 말이다. 선율이 좋은 음악은 귀에 쏙쏙 꽂힌다. 선율이 좋기만 하다면 가사는 막 적어도 되는 걸까, 물론 아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듣고, 곱씹는 노래들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선율이 좋을뿐더러 가사도 좋다는 것이다. 들을 당시에는 흥얼거리기만 했던 가사가 내 삶과 직접적으로 닿는 순간이 생기며, 가사를 천천히 입안에서 굴려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풍미가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
코끼리와 사람, 누가 더 고등 생물인지 첫 문단에 질문을 던졌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대답은 아까처럼 쉽게 나올 것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삶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글과 그림이나 음악 같은 매체를 통해 청자를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떤 고등 생물도 흉내 내거나 따라 하지 못하는 인류의 전유물이다.
이 글을 시발점으로, 나는 숨겨진 혹은 많이 알려진 좋은 곡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청자들이 보다 더 화자에 공감하고, 음악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감개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글을 쓰려고 한다. 블루스, 재즈, 힙합, 락, 팝 등등 다루고 싶은 장르는 많지만 이들을 모두 풀어내기엔 이것저것 난점이 많다. 그래서 장르에 관계없이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특히 한국 인디 노래에 관한 글을 가장 많이 쓸 것 같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청자의 삶에 와닿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