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되면 멀리가서 혼자 살아도 좋다

by 아까마이

전쟁의 시기를 어린 나이에 겪으며 양반이지만 가난한 집안의 첫째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남자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생업에 뛰어들어 가장이나 다름없던 엄마는 딸 셋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외국에 나가든 멀리멀리 원하는 곳에 가서 능력을 펼치고 혼자 살아도 좋다고.


옆에서 자라며 지켜본 엄마는 엉덩이가 가볍고 (일 처리를 빨리 빨리 잘하는 사람들에게 어른 들이 하시는 표현)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며 손이 컸다.

처녀적 양장점에서 일해본 경험으로 스스로 양장점을 차려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는 엄마는 힘들게 번 돈이 모두 생활비와 남자 형제들의 학비로 쓰이는 삶에 진저리를 치며 스물의 어린 나이에 결혼으로 친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연애로 아빠와 결혼하며 친정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지만, 젊고 예쁜 아내가 사업을 하다 바람이라도 날 까봐 걱정하 던 아빠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결혼 전 양장점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어스름에 바삐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달려들어 와락 끌어 앉는 젊은 남자들에 놀라곤 했다는 그런 야만의 시대를 살아 내야 했던 엄마에게 스스로 양장점을 차려 이끌어가는 것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었으리라.

결혼 무렵 늦게 얻은 막내 아들로 환갑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주변에서도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고 하였을 정도로 그 당시 기대 수명에 가까워 있었다. 더군다나 외아들의 홀 어머니 모시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던 시대였다. 그렇게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하던 할머니는 97세까지 장수하시어 결혼 후 장장 40여년의 세월을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셨다. 아들 가진 유세를 부리시면서.


기질이 사내 대장부 같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엄마는 집안에서 아이들만 보고 시어머니 모시는 삶을 많이 답답해 하셨지만, 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덕분에 딸 셋 모두 전문직 여성으로 자랐고 본인들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평강공주에게 왕인 아버지의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는 말이 사실이 된 것과 같은 효과일까?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어머니의 이런 입버릇에 영향을 받은 듯 멀리 그 것도 바다건너 14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는 머나먼 타국에서 15년이 넘는 세월을 살며, 커리어를 쌓고 가족을 이루고 내가 믿는 온달이 왕자가 되기를 아니 왕이 되기를 바라는 삶을 15년이 넘게 살고 있었다. 어느 한 순간 깨달음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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