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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12. 2023

어느 낭만 닥터의 책을 읽다가

11.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 : 정기중

우리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다발성 통증이었다.

구급차도 여러 번 타셨고, 이런저런 검사도 수시로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배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다고 하시니,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파악도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검사는 어머니의 컨디션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며 검사조차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나중에는 등통증을 호소하시면서 밤에도 앉아서 주무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급격히 아이가 돼 가셨다.

결국, 우리는 요양 병원행을 선택했다.


요양 병원 간호사와 입소 면담을 할 때, 간호사는 어머니의 상태를 세 문장으로 요약 정리했다.


"인지 상태는 좋으시고, 정상 생활 가능하심. 전신 통증 있음."


난 그 말을 듣고 '전신 통증'이라는 병명이 있구나, 용어가 있구나, 생각하면서 이렇게 한 단어로 정리된다는 것이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그랬다.


어머니가 입소하고 나서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치매의 증상 중 통증이 있다던데, 어머니에게 경증 치매가 온 건가? 그렇다면 치매약을 드시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으실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대상포진이 왔다 갔나? 대상포진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다녀가면, 그 후 통제되지 않는 신경통과 전신 통증을 여생 내내 겪어야 한다던데. 바로 그거 아니었을까? 노인의 몸은 그렇게 예민하게 살펴볼 일이 없으니, 내가 언젠가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처럼 허벅지 어딘가 살짝 수포가 올라왔다 사라진 수준이라면 어머니는 절대 알아채지 못하셨을 텐데.


어머니가 왜 그렇게 통증이 심하신지, 그건 아직도 여전히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요양 병원에서 통증 관리를 해 주니, 어머니는 안정적인 상태가 되셨고,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치매 노인들을 진료하는 장기중 박사님의 책을 읽다가, 나는 '이거구나' 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은 노인 우울증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다발성 통증, 피부의 이상 감각, 불면, 소화 불량, 심장의 두근거림과 같은 신체 증상이 노인을 압도하고 어떤 의학적 처치로도 크게 호전되지 않는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정기중,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 웅진 지식하우스, 2023


통증이 어떠한 의학적 처치로도 크게 호전되지 않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멈춘다니. 입소 전 우리 어머니의 상태다. 그런데 이게 '노인 우울증'이라니. 뭔가 퍼즐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즈음 우리 어머니는 반복되는 호흡곤란으로 반복적으로 구급차를 타고 계셨다. 한 달 건너 호흡곤란이라는 극한의 상태로 구급차를 탄 것은, 우울증이 오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불면증 약을 받으러 방문했던 동네 신경정신과 선생님께서도, 그 부분을 언급하셨었다. 이런 경험을 한 노인들은 아예 병원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얼마나 무섭겠냐고. 특히 천식 환자들의 경우 누우면 기침이 심해지니까 앉아서 주무시는 경우도 많다고. 천식이 호전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눕는 것을 피한다고.


어머니는 요즘, 우울증 약도 드시고 불면증 약도 드시고 진통제도 드신다. 아니, 진통제는 패치도 붙이신다. 어쨌건 이제 아프지 않아서 좋다고 하시고, 환자복을 입으셨다는 것만 제외하면, 보통의 어머니처럼 보인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면회를 할 수 없고, 휴대폰을 안 받으시니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참 답답하지만. 아프지 않으시다니, 그게 어딘가.


정기중 박사님의 책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에는 치매 환자와, 치매 환자의 가족과,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글이 매우 서정적이다. 그래서 '의사가 글을 참 잘 쓴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이 작가의 직업이 의사였구나'라는 느낌이다. 본업이 작가인 것만 같은.


책에는 '동반 치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리면 다른 한 명도 치매에 걸리는 경우를 말하는 '동반 치매'.


동반 치매의 원인을 하나로 말하기는 어렵다.
미국 유타주립대의 캐시 카운티 연구에 따르면 한쪽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다른 배우자가 치매를 앓을 확률이 6배 올라갔다.
특히 배우자가 아내인 경우 3.7배임에 반해 배우자가 남편일 경우 11.9배로 더 위험이 높았다.

같은 책, 117쪽


어머니가 입소한 병원에도 가족 친화적 병실이 있다. 부부 모두 요양 병원 입소를 하는 경우, 그 둘은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병실에 단독 입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케이스를 별도 공지하는 것 보면, 그런 일로 고민하는 가족이 많다는 얘기다. 평생을 함께한 둘이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엄마와 떨어진 아이처럼 둘은 서로 분리불안을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치매 또는 우울증이 함께 온 경우라면 더욱더.


책에서 저자는 때론 치매 어르신의 가족이 된다. 치매 어르신의 가족으로서 느끼는 혼란스러움, 상실감, 허탈감, 그런 것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데, 진솔하고 인간적이다. 의사도 치매 앞에서는,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 속수무책 슬픔을 느끼는구나 싶으면서 저자를 위로해 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공감력 높은 의사 선생님이라면, 덮어 놓고 믿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다만 공감능력이 이렇게나 뛰어난 사람이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치료하려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이 슬프지는 않을까. 힘에 부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서, 결국 이렇게 쓸 수 밖에 없겠구나, 작가가 될 수 밖에 없겠구나, 나는 그런 결론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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