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족각본
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각본에 따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딸 또는 아들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성인이 되면서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며느리와 사위 등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가족각본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정해진 각본대로 따르는 걸 평범한 삶이라고 여기고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때때로 버겁게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느라 가족각본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 살피지 못한다.
김지혜, <가족 각본>, 창비, 2023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며느리'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 며느리의 도리 첫째는 시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편에 대한 질투를 버려야 하고, 멀고 가까운 친척들을 아끼고 섬겨야 한다. (중략)
며느리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마치 어느 회사의 업무분장표를 보는 듯하다. '며느리'라는 것이 단순히 아들의 아내라는 가족 내 관계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미리 부여된 업무를 담당하는 가족 내 '직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간단치 않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기,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기, 친척들을 아끼고 섬기기, 집안 제사 받들기, 정성을 다해 손님 대접하기, 가사노동에 힘쓰기, 살림살이에 근검절약하기 등, 집안팎의 사람을 만족스럽게 대접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며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비용을 절약해야 하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한 역할이다.
같은 책, 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