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Dec 12. 2023

선생님 때문에 인스타 만들었어요.

여러분,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적절한 모범 답안을 보여 주기 위해, 나는 '첼로'를 배우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첼로를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어요. 예전에 바이올린은 배워 본 적이 있는데, 첼로는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어요. 첼로를 배운 다음에 언젠가 바흐를 연주해 보고 싶어요." 좀 더 신박하고 도전적인 예문을 만들어주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것만 도전하며 사는 사람이다. 안전하고 정적인 것.


나는 종종, 학생들 앞에서 진심을 말한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알듯 말듯한 수많은 예시 문장 중에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꿈꾸는 것들이 종종 들어있다. 학생들은 '첼로'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아스라한, 로맨틱한 눈빛이 되어 버린다. 그런 순간이 되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시간이, 이런 대화의 시간들이 정말 좋다고. 어디서도 가질 수 없는 진심이 담긴 스몰 토크 시간이다.


선생님은 첼로, 그럼 여러분은요? 여러분은 어떤 것에 도전해 볼 마음이 있어요?


이제 앞 다투어 학생들이 말할 시간. 나는 너무 궁금하다. 푸른 청춘인 학생들은, 어떤 도전을 꿈꿀까.

스킨스쿠버 다이빙이요,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이요, 요리요, 태국 여행이요 등등. 그러던 와중에 한 학생이 소리치듯 본인의 꿈을 던진다.


다시 한번, 아이요.


그녀는 이 반에서 유일하게 남편이 있고, 아들도 둘 있는 학생이다. 나는 단박에 알아듣고 문장을 수정해 준다. "셋째 아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셋째? " 우와 우와. 멋있다, 시끌벅적. 학생은 "네~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진짜 본심을 꺼낸다. 그러면 또 우와 우와. 맞아 맞아. 그러면서 짓궂게 말한다. "그런데 또 아들이면 어떡해요?" 그리고 본인들이 또 답한다. "그럼 다시 한번 도전? " 우와 우와. 또다시 아우성.


그럼 나는, 조금 더 듣다가 이렇게 마무리를 해 준다.


가능성은 50% 이지만, 응원할게요.


이런 진심이 담긴 스몰토크의 시간이 너무 좋아서, 몇 학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나는 종종 교과서에 있는 예문 말고, 교과서적인 예문 말고, 그날 배운 문법이나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 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도 학생들처럼 인스타를 만들었다. 처음 인스타를 만들었을 때 학생들은, 선생님 팔로워가 한 자릿수라며 깔깔대고 웃더니 그 자리에서 두 자릿수로 만들어 줬다. 그리고 내가 게시물을 올리고 스토리를 올릴 때마다 정성껏 하트를 눌러 준다. 학생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스토리를 올리던데, 심지어 분명히 내 수업 시간에 내가 준 귤을 딱 그 시간에 올린 것도 있던데, 나는 인스타의 본래 사용법에 맞게 실시간으로 올리진 못한다. 내 재미없는 포스팅을 누가 얼마나 읽을까 생각하면서 시작했는데, 종종 학생들이 DM을 보낸다.


선생님, 이번 학기에 4급을 맡으셨어요?


내가 올린 스토리의 문장이 4급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반응이 좋길래, 이번 학기에는 학기 시작할 때 내 담당 반 학생들에게 내 인스타를 적극 홍보했다. 거기에 선생님이 그날 배운 문법이나 단어로 포스팅을 종종 하니까, 친구 추가하고 참고하라고. 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는 인스타 안 하는데 어떡하냐며 아쉬워하길래, 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만 하고 수업을 끝냈다. 뭐 그렇게까지 아쉬워할 일은 아닌데, 곧 잊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학생이 쉬는 시간에 자기도 인스타를 만들었다며 친구들하고 서로서로 주소를 알려주고 팔로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하는 말


선생님 때문에 인스타를 만들었어요.


아하하하하하하. 학생들 모두 웃고 나도 웃고 하하하. 삼십 대 중반 남자 학생의 저 말이 그렇게 귀엽고 웃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나도, 인스타 셀럽의 길로 들어서는 건가.


신난다.

작가의 이전글 K며느리의 노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