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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Feb 26. 2024

돌봄의 서늘함

13. 돌보는 마음 : 김유담 소설집

세상의 모든 돌봄. 돌보는 마음을 다루는 이 책은, 소설집이다.


최근 돌봄을 주제로 한 에세이가 많아지고 있다. 내 첫 책도, 어찌 보면 부모를 돌보다 든 내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제목에 '돌봄'이 들어가는 소설집은 처음이어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연남동에 있는 <무슨 서점>에서 발견했는데, 에세이 전문 서점인 <무슨 서점>에 소수로 존재하는 소설이었다. 아마도 이 책이 뭔가 에세이와 결이 맞아서 서점 대표께서 컬렉션 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 할머니를 돌보는 손주의 마음,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의 마음, 조카를 돌보는 큰엄마의 마음. 노부모를 돌보는 늙은 자식의 마음.


책에서는 세상의 모든 돌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늘하게.

돌봄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진실이어서 신선했고 그래서 서늘했다.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대추를 기분 좋게,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올가을이 지나기 전에 꼭."

<대추> 23쪽 중


세상의 모든 돌봄의 첫 소설은 <대추>였다. 할머니를 돌보는 늙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젊은 손주의 마음. 할머니가 귀애해 마지않는 손주의 대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매정해서 마음이 아플 만도 한데, 저렇게 말하지만 저 손주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가장 크게 울 것을 알기에, 그것 또한 마음이 아팠다.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이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원> 224쪽 중


여기서 말하는 '그곳'은 요양병원이다. 소설의 제목은 '입원'이다.

책에서는 '그곳'을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반복해서 독자는 '그곳'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독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어찌 됐건, 오늘 '그곳'에 가는 걸 알지 못하는 주인공 할아버지는, 이렇게나 많은 가족이 모여 있어 기분이 억수로 좋다고 말한다.


며칠 전 시어머니를 뵈러 나도 '그곳'에 다녀왔다. 원래 겹치게 면회 일정을 잡지 않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자식들이 함께 방문하게 됐다. 어머니는 많은 자식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에 매우 흥분하셨다. 흥분하셔서, 누굴 먼저 찾아야 하나, 누구의 이름을 먼저 불러줘야 하나, 우왕좌왕하셨다. 아마도 소설 속 할아버지처럼 '억수로'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 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입원> 224쪽)


그러는 와중에도 저녁 메뉴는 뭘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일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략)
나도 늙었나. 평소라면 거뜬했던 일들이 이제 힘에 부쳤다. 먹이고 치우고 먹이고 치우고. 그건 일남이 한평생 해 온 일이었다. 50년 가까이하면서 몸에 익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특별재난지역> 242쪽 중


먹이고 치우고 먹이고 치우고.

먹이고 치우고 먹이고 치우고.

가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는다. '지새끼 지가 키우는데 뭐가 그리 힘드냐'라고. '낳았으면 정성을 다해서 키워야 한다'라고. 맞다. 맞는 말이다. 장염에 걸린 내가, 코로나에 걸린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일어나서 밥을 하는 건, 걸어 다니는 것만 봐도 신기한(이제 나보다 키도 훨씬 큰데) 내 자식을 먹이기 위해서다. 그래도, 그게 내 새끼건 내 가족이건, 먹이고 치우고 먹이고 치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보다는 내 새끼, 그리고 내 새끼의 새끼가 더 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일남은 모종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특별재난지역> 244쪽 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봄. 돌보는 와중에. 돌보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 중 최고는, 돌보는 마음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우선순위가 틀리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마음. 내가 나쁘지 않을까, 마음들이 싸우다가 내가 맞다는 마음이 이기더라도. 자책했던 사실이 지워지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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