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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09. 2024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14. 너무도 쓸쓸한 당신 : 박완서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짜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 어제오늘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니련만 그 추악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실 안의 김 서린 거울에다 상반신만 비춰보면 내 몸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욕조에 잠겨서나 나와서나 내 몸 중에서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즐기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을 거다.
그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박완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1998, 창작과비평사


1998년도에 나온 이 책을, 나는 1999년도에 읽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었음에도 나는 이 단락에 작은 충격을 받아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종종 생각이 났다. 분명 박완서 님의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 집에 있는 많은 책 중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도대체 어느 책이었던가 꼭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찾았다. 나는 이 단락을 박완서 님의 책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읽었다. 이때쯤 박완서 님은 본인의 글을 '노년 문학'이라고 자주 칭하셨다. 내가 박완서 님의 글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작가님은 할머니셨기 때문에, 작가님의 연세를 헤아려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야 그게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이 책을 쓸 때쯤 작가님은 60대 중반이었다. 세상에, 60대 중반의 박완서 작가님이라니. 세상에나만상에나. 나의 생각보다 젊은 할머니였던 것이다.


나의 노쇠한 몸,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작가님의 재치. 그리고 늙음에 대한 당혹스러움. 외면하고픈 마음.


처음 어머니의 대소변을 처리해 드려야 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어머니의 치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 그걸 정신이 온전하신 어머니 앞에서 해 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미처 준비되기 전에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어서 나는 준비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도 그걸 아셨고, 허겁지겁 옆 침대의 간병인들께 빌려서 처음 해 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그런 말 하시지 말라고 대충 말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세탁물 처리실로 도망갔다.


다시 어머니 곁에 돌아와 태연한 척 간이침대에 앉았을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죽었으면 좋겠다."


그때,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떠올랐다. 누군들, 본인의 노쇠한 몸을 보고 싶을까. 나도 보기 싫은 것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이기는 더욱 싫을 테고, 박완서 작가님의 말마따나 그게 거울이라 할지라도 보이고 싶지 않을 게다. 손주 같은 막내며느리에게 그 모습을 보였으니, 나 만큼이나 본인도 곤혹스럽고 수치스러우셨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 계신 요양병원이 '아주 좋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일정 부분 진실일 거다. 아프면 바로 진통제를 놓아줄 의사가 한 건물에 있고, 어느 밤 숨이 차오를 때 두려움과 고통 속에 구급차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거울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본인의 노쇠하고 아픈 몸을 (가족이 아닌) 간병인이 씻기고 입히고 닦아준다는 것. 그것은 서글프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기도 하는 일일 것이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은 소설이다. 노년 이야기가 아홉 편 실려 있는 소설집. 내가 읽은 단락은 첫 번째 소설인 <마른 꽃>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의 생각이다. 서문 중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 서문 중


무려 25년 전에 읽은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본다. 나는 그 사이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이 되었는데, 책은 하나도 낡지 않고 그대로다. 내가 바뀌었으니 감상도 다르겠지. 어떤 생각이 드려나. <마른 꽃> 외 다른 단편들도 찬찬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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