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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19. 2024

죽음을 읽습니다

15. 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 드 보부아르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브런치에 <노년을 읽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매거진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훑어보니 정확히는 '여성의 노년'을 다룬 책들을 읽고 쓴 독서 후기들이다. 그리고 올해 1월 이전에 쓴 글들은 내 첫 책 <연애 緣愛 : 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이야기>에 수정 및 보완되어 특별 코너로 삽입됐다.


나는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노년'을 주제로 한 책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년'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언제고 맞닥뜨릴 수 있는 글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책에서 '노년'을 다룬 부분이 제일 크게, 제일 인상 깊게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여성의 날 즈음 서점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서점 방문이었고, 대형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온라인 서점이나 동네 책방을 방문하는 것과 맛이 달라서 쇼핑 욕구를 불태우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그날 나는 보기 드물게 걸음 수 만보를 찍었다).


그때 을유문화사에서 기획한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이 왜 '여성과 문학'이라는 주제 아래로 들어갔는지 궁금해져서 책을 들춰보고, 바로 사서 서점 안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답답하고 사람 많고 어두운 그곳에 앉아, 인덱스를 붙여가며 열심히 읽었다.


지금까지 내가 매거진에 발행한 글들이 말 그대로 '노년'을 읽고 쓴 글들이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죽음'을 읽었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읽으면서 작가의 어머니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내 자존심을 지킨 기분이 들었다.

당당하게 애도하고, 당당하게 억울해하고.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순순히 작별을 고하지 마시게
하루의 끝자락에서 노년은 격렬하게 타올라야 하느니
격노하라, 빛의 소멸에 맞서 격노하라.......     - 딜런 토마스


죽음에 대해 '격노하라'니. 죽음 앞에서 늘 다치기만 하던 내 자존심을 회복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이제 내가 부끄러워할 건 아무것도 없잖니(25쪽)."라고 말하며 신체의 노화를 체념하고 "이기적인 노인네가 될 테다(31쪽)." 죽음 앞에서 생떼를 부리기도 하고 "화장을 할 수 없게 되겠구나(31쪽)." 서글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은 이불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법이지(75쪽)."라고 말해, 작가와 나를 기함하게 한다.


작가는 작가대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전 제가 해야 일을 하는 겁니다(36쪽)." 의료진의 일이란 무엇인지 보고 느끼고, "이들은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38쪽)." 생각한다. 어쨌든 다들 죽음 앞에서도 본인의 일을 하기에, "환자들을 향한 간호사들의 관심은 우정과 다를 바 없었다(29쪽)."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작가는 때로는 어머니를 혐오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놀라고 철학한다. 이게 뭘까,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쓰인 <해설>을 보고 알게 됐다. 이건 애도였구나. 작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


작가는 죽음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나는 이것을 작가가 느끼는 미안함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나도 죽지만, 우리 모두는 죽지만, 나의 어머니가 죽어갈 때 매우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미안함. 그래서 어머니의 임종 앞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144쪽)."라고 쐐기를 박는다.


대개 죽음에 대한 책은 노년에 대한 책과 또 다르게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빠져들듯 읽고 말았는데, 아마도 그건 책이 무척이나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나는 인문서적을 읽는 기분으로, 죽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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