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브런치에 <노년을 읽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매거진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훑어보니 정확히는 '여성의 노년'을 다룬 책들을 읽고 쓴 독서 후기들이다. 그리고 올해 1월 이전에 쓴 글들은 내 첫 책 <연애 緣愛 : 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이야기>에 수정 및 보완되어 특별 코너로 삽입됐다.
나는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노년'을 주제로 한 책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년'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언제고 맞닥뜨릴 수 있는 글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책에서 '노년'을 다룬 부분이 제일 크게, 제일 인상 깊게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여성의 날 즈음 서점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서점 방문이었고, 대형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온라인 서점이나 동네 책방을 방문하는 것과 맛이 또 달라서 쇼핑 욕구를 불태우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그날 나는 보기 드물게 걸음 수 만보를 찍었다).
그때 을유문화사에서 기획한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이 왜 '여성과 문학'이라는 주제 아래로 들어갔는지 궁금해져서 책을 들춰보고, 바로 사서 서점 안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답답하고 사람 많고 어두운 그곳에 앉아, 인덱스를 붙여가며 열심히 읽었다.
지금까지 내가 매거진에 발행한 글들이 말 그대로 '노년'을 읽고 쓴 글들이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죽음'을 읽었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읽으면서 작가의 어머니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내 자존심을 지킨 기분이 들었다.
당당하게 애도하고, 당당하게 억울해하고.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순순히 작별을 고하지 마시게 하루의 끝자락에서 노년은 격렬하게 타올라야 하느니 격노하라, 빛의 소멸에 맞서 격노하라....... - 딜런 토마스
죽음에 대해 '격노하라'니. 죽음 앞에서 늘 다치기만 하던 내 자존심을 회복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이제 내가 부끄러워할 건 아무것도 없잖니(25쪽)."라고 말하며 신체의 노화를 체념하고 "이기적인 노인네가 될 테다(31쪽)." 죽음 앞에서 생떼를 부리기도 하고 "화장을 할 수 없게 되겠구나(31쪽)." 서글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은 이불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법이지(75쪽)."라고 말해, 작가와 나를 기함하게 한다.
작가는 작가대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36쪽)." 의료진의 일이란 무엇인지 보고 느끼고, "이들은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38쪽)." 생각한다. 어쨌든 다들 죽음 앞에서도 본인의 일을 하기에, "환자들을 향한 간호사들의 관심은 우정과 다를 바 없었다(29쪽)."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작가는 때로는 어머니를 혐오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놀라고 철학한다. 이게 뭘까,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쓰인 <해설>을 보고 알게 됐다. 이건 애도였구나. 작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
작가는 죽음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나는 이것을 작가가 느끼는 미안함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나도 죽지만, 우리 모두는 죽지만, 나의 어머니가 죽어갈 때 매우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미안함. 그래서 어머니의 임종 앞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144쪽)."라고 쐐기를 박는다.
대개 죽음에 대한 책은 노년에 대한 책과 또 다르게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빠져들듯 읽고 말았는데, 아마도 그건 책이 무척이나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