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Nov 03. 2023

나는 나쁜 사람

10. 낯선 여자가 매일 집에 온다 : 무라이 리코

"취미는 임종 준비, 삶의 보람은 손자입니다."


오르골에서 나온 에세이 <낯선 여자가 매일 집에 온다>의 에필로그 첫 문장이다. 이 글이 실화라고 서문에 나와서, 나는 혹시 치매에 걸린 작가가 정신이 맑을 때 조금씩 쓴 글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보니,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쓴 글이었다. 그리고 책 제목에 나오는 '낯선 여자'는 작가 본인이었다. 며느리를 '낯선 여자'라 칭하는 주인공은 여든한 살이다.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75세를 기준점으로 해서 이전은 '전기 고령자' 이후는 '후기 고령자'로 분류한다고 한다. 관리하는 입장에서야 그게 편하겠지만, 75세인 사람들은 뭔가 정말 마지막 무언가가 꺾인 기분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 자신의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거에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한데, 거기에 후기 고령자가 되는 시점까지 더해진다니. 너무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까슬까슬한 위화감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아주 강렬한 슬픔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길이 없었다.

<낯선 여자가 매일 집에 온다>, 무라이 리코, 오르골, 87쪽


치매가 심해지면,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이유와 과정 등 스토리는 다 잊고 감정만 남는다고 한다. 뭔가 이상한 거 같긴 한데, 불쾌한 느낌이기도 한데, 그게 뭔지 전혀 모르는 상황. 트루먼쇼의 주인공임을 깨달았을 때, 트루먼의 마음이 왠지 그랬을 것 같다. 카오스.


너는 나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툭툭 던진다.
얼굴만 보면 "약은 드셨어요?"하고 묻는다.
진절머리가 난다.

   같은 책, 156쪽


아직 노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식사하셨냐'와 '잘 주무셨냐', '약은 먹었냐'일 텐데. '진절머리'가 난다니.  

기분과 상태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어떤 것의 O/X를 물었구나. 저의가 나빴구나.


어차피 내가 전부 나쁘다
나는 골칫덩이다


  같은 책, 156쪽


치매에 걸린 주인공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며느리가 나쁘다고 하고(1장 너는 나쁜 사람) 남편이 나쁘다고 하고(2장 파파몬은 나쁜 사람), 의료인인이 나쁘다고 하고(3장 흰옷 입은 여자는 나쁜 사람) 수리기사가 나쁘다고 하고, 주변의 모두가 나쁘다고 말한다. 뒷장에서는 치매에 걸린 주인공을 속여 먹는 진짜 나쁜 사람도 나오지만, 어쨌든 가족들은 모두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설고 나쁜 사람이 된다. 슬픈 이야기지만 담백한 어투와 전개에 소설을 보듯 그렇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은 제목이 참 슬펐다. 결국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생각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니까.


우리는 살면서 줄곧 '나의 잘못'을 반성한다. 후회하고 더 잘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치매에 걸려서 까지, 모든 기억을 잃고 성정까지 바뀐다는 그 질병에 걸리고 나서도 '나는 나쁘다'라고 말한다니.

억울하다. 많이 억울하다.

사랑했던 가족까지 잊는다는 그 병에, 밥 먹는 방법까지 잊는다는 그 병에 걸려서도, 마지막에 자기를 탓하다니,


이건 정말 많이, 너무한 거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 10. 스산한 마음을 쓰면서 달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