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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28. 2024

작가가 된 선생님

"선생님이 작가가 됐어요. 여러분 덕분이에요."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학생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내가 처음 작가가 되고픈 내 꿈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이 바로 학생들 앞이었다. 엉겁결에 말해 놓고 '아, 이게 내 꿈이구나' 문득 깨닫고, 엉겁결에 많은 학생들의 응원을 받았다. 항상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건 나였는데, 학생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파이팅'이라고 외쳐 주었다. 현실성이 있든 없든, 가능성이 높든 낮든, 날 이렇게 응원해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힘이 되었다. 그리고 자주 어떤 순간을 상상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내 책 출간 소식을 알리는 장면, 학생들에게 사인해 주는 장면, 내 책 속 한 단락을 함께 읽는 장면, 그런 순간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첫 북토크 즈음에 나는 운이 좋게도, 마침 한국어 중급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행복은 프랑스어로 'bonheur', '좋은 징조(bon heur)'라는 뜻으로 라틴어가 어원이다.
불행은 'malheur', '나쁜 징조(mal heur)'이다. 즉, 행복이나 불행은 운과 관련된다는 의미다.
몽테뉴는 지혜조차 행운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이화열 <서재 이혼 시키기> 2023, 앤의 서재. 161쪽


선생님이 '책을 썼다' 그리고 '북토크를 한다'라고 소통할 수 있는 단계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인스타그램에 책 출간 소식을 전했고, 이제는 고급에서 공부하고 있는 몇몇 학생들이 북토크에도 오게 되었다. 북토크에 온 몇몇의 학생들은 가벼운 질문에 대답도 했고, 토크 내용의 70%쯤 이해했다며 아주 흡족해서 돌아갔다. 자신이 한국어로 진행되는 이런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도, 그리고 토크 내용의 70%쯤을 이해한다는 사실도,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매우 멋있었다'라고 부끄럽고 고마운 말도 잊지 않고 전해줬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학생들이 내 책을 들고 연구실에 찾아온다. 사인해 달라며 나보다 더 감격한 얼굴로 찾아오는데, 사실 나는 너무 미안하다. 대부분 중급 학생이고 이제 막 고급에 들어선 학생들에게 내 책은 분명, 기념품일 뿐일 텐데. 이걸 몇 장이나 읽으려나. 걱정되지만, 기념품이 되더라도 학생의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라면 그 또한 의미 있을 거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항상 학생들은 나보다 한수 위다. '딱 한 장 읽었다'면서 배시시 웃는 학생에게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그 학생은 말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6급까지 공부할 거니까 기다리세요. 그때 다시 읽을 수 있어요.


나는 신속히 답한다. "그럼요, 그럼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책을 사서 직접 찾아오는 학생들은 매우 적극적인 학생들이다. 본인이 선생님에게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아니까, 하고픈 말을 직접 하지 못하는 학생들, 정말 많다. 어떤 학생은 책을 산지도 몰랐는데 귀국한 후 조용히 본인의 인스타에 내 책을 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서점에 입장해서 내 책이 꽂혀있는 곳까지 가는 여정을 무려 영상으로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DM을 보내는 것, SNS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부끄러움 많은 학생들은, 글쓰기 숙제를 통해 내게 진심을 전한다.


선생님,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데 나중에 한번 봐주실 수 있으세요?
선생님도 작가시니까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럼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거나, 나는 소설 전문이 아니다라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말로 우리의 흥을 깨고 싶지 않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우니까. 학생들에게 내가 이야기가 되어서, 책을 통해 우리의 시간들을 행복하게 기억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제 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외국인 학생들. 글을 쓰니 그들과 향유할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생긴 같다. 그래서 더욱 좋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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