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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20. 2024

마법의 말 '괜찮아요'

"괜찮아요?"


한국어 교실에는, 한글 수업부터 사용되는 마법의 말이 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처음 한국어 수업을 참관하러 갔을 때, 나는 교사가 종종 '괜찮아요?'라고 묻는 것을 '발견'했다. '아, 수업 때 교수님들이 말한 것이 이거였구나.' 간신히 한글을 뗀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이해했냐, 계속해도 되냐, 문제없냐' 등을 확인하고 넘어가려면 어쨌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손가락 제스처마저 다른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OK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사실 'OK?'라고 묻고 싶지만 OK는 영어다. 그러므로 한국어 선생님들은 'OK'를 대신할 말로 한국어의 '괜찮아요'를 찾아냈고, 어쩔 수 없이 '괜찮아요?'라는 표현을 애용하게 된 것이다. 참관을 하는 4시간 내내, 교사와 학생들은 '괜찮아요'를 묻고 대답하길 반복했다. 들을 때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매우 이상했는데, 이제 나도 '괜찮아요'를 애용하는 N년차 한국어 교사가 됐다. 그래서 이제는 내 아이와 이야기하다가도 "도현아, 괜찮아?"를 묻고, 아이는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라고 받는다. 엄마 정신 차리라고, 자기는 한국 사람이라고.


모든 것이, 다종다양


학생들과 수업하다 보면 정말 많은 '다름'을 느낀다.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을 셀 때 엄지부터 접지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은 주먹을 쥐는 것이 시작 동작이고 거기에서 엄지부터 편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만들 때, 학생 중 누군가는 주먹을 쥔다. 우리는 시작이 다르다. 누군가는 집게 모양의 손이 준비 동작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주먹 쥔 손이 준비를 뜻한다.


4지 선다형 문제에서 답을 체크할 때, 우리나라는 숫자를 지시문 옆에 쓰거나 해당 번호에 동그라미를 친다. 또는 해당 번호에 'V' 표시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어떤 학생은 번호 위에 빗금을 긋고, 또 어떤 학생은 해당 번호 아래에 비스듬히 'V'를 표시한다. 그렇다면 이건 위, 아래 중 어느 것이 답이라는 뜻인가? 학생의 의도는 위인가 아래인가.


한국어 교실 속에 '일반 상식'은 없다. '대부분'도 없다.


"미안해요"와 "죄송해요"


아이가 잘못을 했다. 그럼 "엄마, 미안해요"라고 말한다. 나도 가끔 아이에게 잘못을 한다. 우리는 종종 서로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죄송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엄마 생일에 생일 카드 쓰는 것을 잊어버려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해요'가 맞지만, 친구와 놀다가 학원 가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죄송해요'가 맞다.


초급 학생은 '미안해요'와 '죄송해요'를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안해요'로 만족한다. 학생이 '죄송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기다린다. 그리고 드디어 '미안해요'와 '죄송해요'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나는 오랫동안 간지러웠던 등을 드디어 긁은 기분을 느낀다.


그렇군요


나는 요즘 이 마법의 말에 빠져 버렸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맞장구칠 때 '그렇군요'를 사용하는데, 나는 종종 말문이 막힐 때도 '그렇군요'를 사용한다. 또는 상대방의 말을 듣긴 들었는데 내 생각은 숨기면서 맞장구치고 싶을 때. '그냥 들었다, 끝'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 나는 '그렇군요'로 받는다. 그럼 학생들은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해 웃는다. '선생님의 저 할 말 많은 눈을 보라, 선생님도 지금 너무 웃긴가 보다.' 그런 분위기를 우리는 즐긴다.


마법의 단어


모든 언어에는 마법의 단어가 있는데 나에게는 영어의 "No, thanks." 또는 "That's ok"가 그랬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리조트에 있는 많은 스태프들이 뭔가를 나에게 묻고 묻고 또 물었다. '그밖에 더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 그런 류의 마지막 질문들. 나는 지금 충분히 좋은데 자꾸자꾸 괜찮은지를 물을 때. 저 두 말을 번갈아 사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두 문장만으로 족하구나. 나는 한 달이라도 여기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얼추 이해할 수 있는, 리스닝 실력이 스피킹 실력에 비해 현저히 좋은 한국사람에 국한된 이야기다.


소설 <영원한 이방인>에 이런 단락이 나온다.


문제없어.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이 말은 잘 배웠다. 아이들은 모두 그 말과 함께 잘 가라고 손을 흔들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힘차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어, 미국인들의 과장된 모습으로  이것이 그들이 공유하는 마지막 언어라는 것을 미처 모르고. (356쪽)

이창래 <영원한 이방인> 2015, RHK


나는 이 단락에서, 이것은 영어로 'No, problem'이겠지, 직관적으로 알아챈다. 마법의 단어는 빠져들기는 쉽고 벗어나기는 어려운가 보다. 마법의 단어인 '문제없어'는, 딱 거기까지인 듯 그 이상의 곁을 주지 않는다.


2024년 5월 23일, 봄 학기가 끝난다. 열흘쯤 쉰 뒤, 여름 학기가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국어 교사의 1년은 10주를 주기로 시작하고 끝나고 시작하고 끝난다. 매 학기 기역 니은을 배우는 새로운 학생들이 어학당에 들어온다. 반대로 매 학기 유창하기 그지없는 연설을 끝으로 많은 학생들이 어학당을 떠난다. 다음 달에는 또, 어떤 학생들이 내 학생이 되려나. 나는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려나.


나는 적당히 설레고, 적당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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