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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09. 2024

감탄 전문가, 한국어 선생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반응 전문가다. 반응과 호응 전문가. 나의 짧은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초등학교 선생님의 경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는 교육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동기들은 90%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고백할 때까지 나 또한 초등학교 선생님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어휘와 말투, 상대방과 대화할 때 호응하는 모양새 등이 완벽히 교사 집단과 같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어떤 교수자에게도 잘 맞췄고 호응이 대단했다. 본인들도 발언권만 잡으면 평균 이상의 스피치가 가능하면서도 그랬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들었다. 종종 동기들은 본인들에게 '방청객' 기질이 있다며 웃었는데 그건 나도 같았다. 나는 회사원으로 일할 때 종종 톤 앤 매너와 사용하는 어휘가 '튄다'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정제돼 있고 바른 언어를 써서였다. 언젠가 내가 광고 쪽 친구들과 같이 일했을 때, 한동안 나는 그들의 비속어와 은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 나는 대화 중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었다. "그게 뭔데요? 무슨 말이에요?" 그럼 친절하게 말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뭐 그런 어휘를 처음 듣느냐며 어디 시골에서 살다 왔냐며 희한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내 베프 사촌 시누이는, 내 말투를 많이 좋아하시고 유쾌해하신다. 손아래 올케가 없는 그분은, 노래하듯 말하는 내 말투가 매우 예쁘고 재미있다고 하셨다. 가끔은 "아유, 그랬어요?" 하시면서 어설프게 내 말투를 따라 하기도 하신다. 나랑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분이셔서,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나서, 그러셨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한국어 교사 집단에 와서 한 번만 보시면, 교사 1 교사 2 교사 3 수준으로 또 다른 나를 보실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원주에 있는 미술관 '뮤지엄 산'에서 제임스 터렐의 설치 미술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빛의 예술가'로 불리는 제임스터렐의 작품은, 정말 색달랐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인터넷에서 많이 찾았는데, 관람객들이 찍은 사진 또는 영상이 전혀 없었다. 궁금해하면서 방문해 보니, 소수의 인원만 시간대 별로 입장 가능하고, 절대 카메라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만약 카메라 촬영이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을 그대로 촬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빛을 활용해 공간을 다루는 설치 미술은 매우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전체 관람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어딘가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곳에 다다른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경험을 하면서, 나는 마음껏 감탄하고 싶었다. 꽤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고 싶기도 했는데, 큐레이터가 매우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유도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막는 수준이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을 막는 기분이란.


그때 느꼈다.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설에 못지않게 사람에게는 '감탄의 욕구'가 있구나. 무언가에 반응하고 호응하고 감탄하고픈 욕구. 고독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갈 욕구. 적극적으로 세상과 관계할 욕구.

때로는 나의 지나친 반응력과 호응력 때문에 매일의 에너지를 다 써버려 지쳐 쓰러지기도 하지만, 또 그게 아니라면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쓸 건가. 내일 또 반응하고 호응하고 살려면, 일단 오늘은 빨리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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