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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5. 2024

나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어학당에서 근무하다 보면 만학도를 종종 본다. 정규 학교 공부가 아니고 어학 공부이니 '만학도'라는 정의에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나이가 많은 학생. 그런데 단어를 찾아보니 '만학도'의 '만(晩)'은 늦을 만이다. 나는 가득 찰 만(滿)인 줄 알았는데, 역시 내 인생은 항상 꿈보다 해몽이다.


어학당 학생들의 평균 나이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학생. 20대가 대부분인 교실에서 구성원들보다 나이가 좀 많게 느껴져 확인해 보면 많아야 30대 초중반. 40대부터, 아니 40대는 좀 애매하고 50대면 충분히 만학도다. 60대도 더러 보이고 간혹 70대도 있다. 40대 이상의 학생이 교실에 들어오면 나는 일단 유심히 주의 깊게 살핀다. 혹시 적응을 어려워하진 않을까, 또래가 없으니 외로워하진 않을까, 뭔가 문화가 달라 소외감을 느끼진 않을까, 무엇보다 학습 속도가 빨라 공부를 버거워하진 않을까, 그런 것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만학도들은 잘 지낸다. 


작년에 가르쳤던 한 학생은 꽉 찬 40대 후반이었는데, 20대 학생들과 예쁜 카페도 즐겨 다니고 가끔 술자리도 함께하고 한국 방방곡곡 여행도 함께 다녔다.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 그들은 그 학생을 '언니'라고 부르며 잘도 따랐다. '언니'라고 부르긴 하지만 서로 너무 많이 배려해서 불편하거나 어색해지지는 않는 관계, 참 좋아 보였다. 사실 나이로 치자면 친구들의 엄마 나이에 가까울 그녀였지만, 대화의 주제가 BTS여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어라는 언어가 그들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서 그런지, 아무튼 같이 찍은 인생네컷 속 그녀는 완전히 모두와 함께였다. 그들은 진정 친구처럼 보였는데, 나는 그게 연장자를 예우하려는 한국 문화로부터 다소간 자유로워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학도는 대게 용감하다. 만학도가 반장 역할을 하거나, 연설을 해야 할 때 솔선해서 하거나, 그런 경우가 많다. 혹시 나이가 많은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그들을 용감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지난 학기에 졸업 연설을 한 학생은 50대 후반이었다. 자그마한 키의 아시아계 여성이었는데, 학생은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안경을 꺼내 끼며 "학업의 가장 큰 방해꾼은 노안이었다"라고 고백해 좌중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물론 그 말을 알아듣고 격하게 공감한 것은 교사들 뿐이었지만).  그러면서 만학도의 학업이 얼마나 할 만했는지를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데, 40대 중반인 나는 크게 감명받았다. 옆을 보니 40대에 들어선 다른 동료 교사들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분위기였다. 화장에도 헤어 스타일에도 연애에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신은, 진정 자유로운 학생이었다는 고백. 이보다 더 진정성 있을 순 없다. 또 나이 많은 자신을 열린 마음과 애정으로 품어 준 젊은(아니 어린) 학우들에 대한 우정 고백, 그것 또한 아주 좋았다.

그리고 100세 시대인 지금, 50대는 공부하기 아주 딱 좋은 나이라고 단언하며 연설은 끝난다.


이번 학기에 내가 가르치는 만학도는 50을 살짝 넘긴 남자 학생이다.

한국에서 오래 산 그는, 한국인 가족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문화에 매우 익숙하고 아는 것도 많다. 학생들의 아버지 뻘인 그는 첫날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여러분. 저, 선생님 아니에요. 학생이에요." 그렇게 모두를 무장해제 시키고는, 때때로 우리를 웃게 한다. 그리고 항상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내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 어떤 고민과 걱정을 이야기하면, 진심을 다해 조언한다. 그리고 나는 그와 나를 종종 '우리'로 묶어, '우리는 옛날 사람이라서' 또는 '나이가 좀 많아서'라고 말하며 MZ들 사이에서 소소한 연대를 즐긴다.


그렇게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는, 매력 있는, 재미있게 사는, 그런 학생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다른 나라에 어학연수를 간다면, 어떨까. 어차피 이제 나는 20대가 아니고, 30대였다면 나이가 많은가 어쩐가 고민했겠지만, 어중간한 그런 나이보다는 아예 중년이 된 지금의 나이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이제 혼밥도 잘하고 혼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MZ들과 때로는 즐겁게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겠지만, 혼자 돌아다녀도 그 또한 좋지 않을까. 학습 속도가 조금 더디겠지만 그게 뭐. 나는 이제 대학에 갈 것도 아니고, 어학 성적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진정 즐기면서 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이 학교에서만 벌써 9년이다. 학교 안에 있으니 세월이 참 잘도 간다. 때가 되면 벚꽃이 피고 때가 되면 눈이 온다. 이대로 계속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다. 때때로 내가 나이 듦을 느끼지만 그것은 잠시고, 나는 내 나이를 종종 잊는다. 그것이 내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내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할 때, 나는 자주 겁이 없어진다. 도전하는 사람들 틈에 있어서 그런지, 다양성이 최고인 집단에 있어서 그런지,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해보지 뭐.'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나는 생각한다.


나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지.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무모 말고 도전이라 말해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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