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잉 중인 인플루언서 <프라우허>님이 "커피차 필요하신 분~"이라고 시작하는 릴스를 올렸다. 응원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간다면서, 가을 되면 출동하려고 했는데 가을이 너무 늦게 와서 이렇게 늦어졌다며, 어디든 응원이 필요한 곳을 댓글로 적어 달라고 했다. 500잔까지 가능하다고. 나는 운 좋게 릴스가 뜨자마자 바로 봤고, 신속하게 댓글을 달았다. 망설임 없이, 내 언니의 학교인 <일성여자 중고등학교>로 커피차 좀 보내 달라고. 평균 나이 70대 여고생 분들이 커피차로 응원을 받으면, 얼마나 기뻐하겠냐고. 나는 진심을 담아 글을 달았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글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올리자마자, 다른 팔로워 분들이 빛의 속도로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응원 가시면 좋겠다고. 본인도 댓글을 달았지만, 그래도 여기에 가시면 진짜 좋겠다고. 끝없이 올라가는 하트 수를 보면서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프라우허님께 어느 날 DM이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
첫 번째로 커피를 받아 신나고 기대 가득인 학생 분들
<프라우허>님은 무해한 살림, 무해한 생활을 지향하는 인플루언서다. 나는 <프라우허>님을 블로거 시절부터 구독해 왔는데, 그때는 옆모습 뒷모습 전체 실루엣 정도만 사진으로 나왔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고 영상이 일상화되면서, 캐릭터가 입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유정님의 목소리도 얼굴도 익숙하다. 매일 듣고 보니까. 난 <프라우허>님의 게시물을 보고 스텐팬의 세계에, 샴푸바의 세계에, 보자기의 세계에 들어섰고, 용기 내는 삶(포장 음식 주문 시 용기를 가지고 가는 삶)에도 입성하게 되었다.
<알맹상점>은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의 그 <알맹상점>이다. 서울역 옥상정원에 있는 <알맹상점>에 가면, 제로웨이스트숍이 있다. 거기에 가면 로션도 토너도 리필 가능하고,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각종 상품들이 있다. 쓰레기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매우 젊고 매우 핫하다.
이 분들이 모여, 평균 나이 70대 <일성여자 중고등학교>에 <일회용 없다방> 커피차를 보내 주셨다. 나는 댓글만 썼을 뿐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 대체! 올해의 행운을 여기에 모아 모아 다 쏟은 기분이다. 아니, 그래도 부족할 행운인가.
<학교 전경>, <복도에서 바라 본 앞뜰>, <뒷뜰> 순서
내 언니가 10년 넘게 근무한 학교인데, 이렇게 찬찬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어 본 적은 없다. 커피차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둘러본 학교는, 매우 운치 있고 매우 아늑했다. 두 건물을 연결한 연결 통로는 구름다리 같았고, 화장실 앞 복도에서 보이는 앞뜰의 나무는 정감 있고 고요했다. 잠깐 전화 통화하느라 나가 본 뒤뜰은 또 얼마나 정겹고 푸르른지. 거기에는 작은 평상과 운동기구가 있었다.
1층 컴퓨터실에는 40명이 넘는 여고생들이 돋보기를 장착하고 데스크톱에 앉아 있고, 위층 음악실에서는 가곡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도시 한 복판인데, 여기는 다른 세상이구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느낄 즈음, 교무부장님의 안내 방송이 들렸다. '1학년 1반부터 내려갑니다.' 안내에 맞춰 삼삼오오 내려온 학생들은, 커피차를 보자마자 나란히 나란히 여기저기서 마구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게 뭐냐고, 연예인들한테만 가는 그 커피차 아니냐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나고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나는 마치 연예인이 된 것처럼, 내 책을 들고 온 학생들에게 사인을 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도 찍고. 나도 수업하러 가야 하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더 놀라운 일은, 커피차 운영이 종료된 뒤에 일어났다. 40만 인플루언서 <프라우허>님은 오늘의 커피차 이벤트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했고, 게시글을 본 학생의 자녀분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여기 우리 엄마가 다니는 학교예요!"
"펑펑 울면서 엄마와 통화했어요. 딸도 못 하는, 이런 응원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