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면 충분하다.
어머니는 보통 휠체어를 타고 로비에 나와 계시는데, 이제 병원 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머니가 안 나와 계시면 슬금슬금 병실로 다가간다. 그럼 어머니는 우리를 알아보고 반색을 하고, 간병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우리에게 온다. 주차하고 본관에서 면회 신청을 하고 방역하는데 5분, 다시 어머니가 계신 신관으로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가는 데 5분.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 20분.
20분 동안 어머니는 알차게 모든 것을 하신다. 일단, 엉엉 우신다. "너무 보고 싶었어. 왜 이제야 왔어." 처음에 어머니가 울었을 때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는데, 우리는 이제 "우리 엄마 또 우네." 우스갯소리도 하고 울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두세 살 아이처럼 어머니는 금세 뚝, 울음을 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독백이 시작된다. "요양병원비가 비싸서 어쩌냐." 하지만 바로 수습하신다. "아빠가 공비를 잡은 덕에 엄마가 이렇게 편하고 싸게 있지 뭐야." 어머니는 정말로 보훈대상자의 가족이다. 그리고 손주의 안부를 묻고, 날짜를 확인한다. "오늘이 음력 며칠이냐?" 다음은 어머니의 통증을 이야기하신다. "아픈 데가 많아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오래 산다니." 그리고 요양병원이 아주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이쯤 되면 이야기의 끝이 보인다. "병원에서 씻겨 주고 주사 놔주고 밥도 해 주고 빨래도 해 주니, 혼자 있을 때 보다 훨씬 좋아. 머리도 잘라 줘." 그리고 마지막, "이제 얼른 올라 가. 나도 밥 먹어야 돼. 그리고 자주 와, 보고 싶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도현 엄마는 손이 어쩜 이렇게 예쁘냐."라는, 내 칭찬도 빠뜨리지 않으신다.
이 모든 것들이 20분 만에 이루어진다. 마치 과속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숨차게 무언 갈 해 내는 모양새다. 나이가 많아지면 모든 게 느릿느릿, 생체 시계도 느릿느릿, 말하는 것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걷는 것도 느려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본인이 체감하는 인생 속도는 그 반대다. 시간이 나이의 속도로 간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머니의 인생 속도는 이제 90km다. 90km의 속도로 달리면서 마음먹은 것을 해 내야 하니, 얼마나 마음이 바쁠까.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치 요즘 유행하는 숏츠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중요한 것은 다 들어있지만 음미할 새 없이 스토리를 건너뛰는 요약 영상. 90km라는 속도는, 붙잡지 않으면 넘어지는 속도다. 멀미가 날 만 한 속도.
지난주에 만난 어머니는, 더 늙어 있었다. 도대체 사람은 어디까지 늙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번 달의 어머니는 조금 더 늙으셨구나. 지난달의 어머니는 오늘의 어머니에 비하면 젊었구나. 이 또한 마찬가지다. 시속 90km의 속도로, 어머니는 늙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