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에게 이별이란

뭘까

by Agnes

우리는 매주 일요일 저녁 성당에 간다. 가서 중고등부 학생 미사를 드린다. 보통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주일 오전 미사를 주로 드리는데, 나는 한 주를 정리하는 일요일 저녁 7시 미사가 참 좋다. 아니, 아이가 가는 시간대에 같이 가고 싶어서 그 시간에 간 지 꽤 오래됐다.


뒷줄에 앉아서 보면 성당 앞쪽에 중학생, 고등학생, 중고등부 성가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중고등부 미사는 독서자도 중학생, 복사들도 중학생, 성가대도 중고등학생들이다. 새 학기에 성가대에 중1학생들이 대거 편입되었을 때, 한동안 나는 미사 중 웃겨서 성가를 부르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너무나 엉망 이어서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올라온 친구들은 아직 중학생으로 시프트 하지 못했고 반주는 음이 안 맞고 노래는 음정이 불안하고 고음불가 랩소디가 난리다. 가만히 보니 내 주변의 형제, 자매님들도 나랑 비슷하다. 웃느라 눈이 다들 반달이 되어 있다. 근데 그럼 어떤가. 너무나 모두가 귀여웠다.


나는 미사가 끝나고 아이에게 톡을 보냈다. 아이는 중고등부 사도단장이다. 즉, 대표다.

성가대 무슨 일?


아이에게 의젓한 톡이 왔다.

허허.....


한 달에 한 번, 사도단장으로서 각 분과에 코멘트를 적는 날이 있다고 한다. 뭔가 잘한 점은 칭찬하고 미흡한 점은 개선을 독려하고 응원이 필요한 분과에는 파이팅을 전하고 그런 날인가 보다. "그때 성가대에 연습 좀 더 하라고 그러지 그랬어?"라고 말하니 아이는 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조금 더 연습해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거기서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을 도저히 뺄 수가 없었어."라고. 아마도 칭찬받지 못했을 때의 심정을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본인들이 미흡한 점은 성가대가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성당 안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어제는 성당 안에서 작은 이별이 있었다. 아니 큰 이별이 있었다. 수녀님 두 분이 다른 곳으로 발령받으셨고, 고3을 마친 고등부 학생 세 명이 졸업식을 했다. 이제 그들은 중고등부 미사가 아닌 일반부 미사를 가야 한다. 수녀님 두 분은 아마도 큰 마음먹고 수녀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지 않는다면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눈물을 보인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눈물을 훔치고 사회를 보는 아이는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한다. 아마 이것은 지금껏 아이들이 만난 이별 중 손에 꼽을 만큼 큰 이별이 아닐까.


신부님은 피아노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서 마음껏 포옹하고 아쉬워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 줄지어 선 아이들은 서로를 안아주고 눈을 맞추고 농담을 가장한 진담을 건넨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신 신부님께 너무도 감사했다. 이제 간신히 서른이 되었을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마련할 줄 아시는 걸까.


끝나는 모든 것, 모든 엔딩에는 애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물건이든 관계든 시간이든 그 무엇이든. 모든 것에 애도의 시간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곧 50인 나에게는 그런 바람이 있고 이제 곧 스물인 내 아이에게는 그런 성정을 갖게 해 주고 싶다. 우리에게 성당은 그런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