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은 자리에도 따뜻함은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돈이든 시간, 인정, 관계… 뭔가가 조금만 더 차올라주면 마음도 편할 것 같은데, 현실은 늘 어딘가 비어 있고, 그 빈틈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예전엔 ‘풍족함’이 행복의 거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었다.
많이 가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더 따뜻해지고, 따뜻해지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그래서 부족함이 생기면 바로 흔들렸다.
고개를 들기보단 허리를 굽히게 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사람들 앞에서 괜히 위축되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공식이 틀리기 시작했다.
풍족한 날도 마음이 허전할 때가 있었고,
정말 부족한 날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던 날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꼭 ‘가짐의 양’에 정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어쩌면 풍족하지 않을 때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기도 한다.
한정된 여건 속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였는지 뚜렷하게 보이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서 감사를 찾게 되는 순간도 있다.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작은 친절,
문득 떠오른 고마운 사람 한 명,
혼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희한하게도 하루를 단단하게 붙잡아주기도 한다.
나는 특히 ‘사람 관계’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뭔가 내 손에 많을 때는 주변의 진심이 잘 안 보였다.
내가 가진 것 때문인지, 나라는 사람 때문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비워져 있을 때,
지쳐 있을 때,
겉으로 풍족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몇몇 마음들은 정말 숨길 수 없는 진심이었다.
그런 순간마다 생각했다.
아, 행복이란 게 풍족함에만 달려 있다면
우리 대부분은 평생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따라가며 살아야 하겠구나.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풍족한 삶이 당연히 나쁘다는 건 아니다.
누구나 넉넉해지고 싶어 하고, 그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넉넉함을 반드시 갖지 못해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관계, 한 문장, 진심, 따뜻함,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부족함은 때로 우리를 위축시키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야 비로소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
풍족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행복은 꼭 풍족함을 통과해야만 도착하는 목적지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순간은 없을까?’
그러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하나는 있다.
그 작은 하나 때문에 오늘도 괜찮아진다.
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붙잡고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든다.
‘아, 내가 지금 누리는 이 평안이… 꼭 내가 가진 것의 크기에서 오는 게 아니구나.’
이 마음을 설명해 주는 말씀이 있다.
바울이 고백했던 그 유명한 구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매일 일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2)
이 구절을 처음 들었을 때는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안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그저 상황에 적응 잘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살아 보니까 알게 됐다.
그 말은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음이 단단해진 상태에 대한 고백이었다.
풍족한 날도, 부족한 날도
그날의 상태가 나를 흔들 이유가 되지 않는 마음.
예전의 나는 ‘풍족해야 편안하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가끔은 풍족함보다 부족함 속에서 더 깊은 감사가 피어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위로를 만나는 날도 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뭔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더 이상 외적인 조건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이 ‘모든 것’은 모든 성취가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부족할 때도 괜찮은 이유.
풍족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는 결국 상황 너머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바라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살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그렇지만 예전과 다른 건,
풍족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낡은 믿음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빈 곳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조용히 채워가고 있다는 것.
그 작은 변화가 오늘도 나를 지탱해 준다.
풍족함을 내려놓는 여정이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소소했고,
누군가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주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마음이 어느 순간 크게 달라져 있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비어 있는 지점들을 보면 가끔은 초조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초조함에 완전히 삼켜지지 않는다.
부족한 상태가 곧 불행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고 있으니까.
예전처럼 내 삶의 '가짐'을 기준 삼아 나를 평가하지 않게 되었고,
비어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내가 덜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풍족함은 우리를 편하게 해 주지만,
부족함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다.
풍족함이 주는 안정도 좋지만,
부족함 속에서만 배워지는 것들도 분명히 있다.
사람의 마음, 관계의 진심, 작은 것에 감사하는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살아보면 안다.
우리가 완벽히 모든 걸 갖추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은 드물다는 걸.
그렇다면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건
채워진 것보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마음’ 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살았지만,
그 안에서 웃을 수 있었고
따뜻했던 순간이 몇 번은 있었다.
그 몇 번의 순간이 내가 하루를 버티고 내일로 걸어가게 한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작은 따뜻함들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삶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게 흐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부드러움 속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