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을까」

"상처를 안고도 다시 마음을 여는 일"

by J u

사랑은 늘 어렵다.

시작할 때보다, 시작하고 난 뒤가 더 그렇다.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어도,
그 마음을 오래 지켜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한동안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자주 던졌다.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더 조심하게 되고,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먼저 거리를 두게 된다.
마음이 먼저 가는데, 몸과 말은 한 발 늦게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사랑이란 게 참 묘하다.


상처를 준 것도, 치유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은 누군가를 향해 가고 싶은데,
동시에 ‘또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이 발목을 잡는다.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사랑은 점점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된다.


그래서 한때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치더라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저 조심스럽게 주변을 맴돌며
내 감정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잘한다는 건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다시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사랑받아 본 경험이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지점에서였다.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은 늘 조건이 따라붙었다.
잘해야 하고, 맞춰야 하고, 실망시키지 말아야 했다.
그런 사랑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사랑은 늘 긴장 속에서 유지해야 하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달랐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도,
마음이 흐트러지고 멀어졌을 때도,
그분의 시선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 사랑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고,
고쳐진 다음에야 허락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누군가를 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상처를 피하는 게 사랑의 목적이 아니라,

상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는 게
사랑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사랑은 쉽지 않다.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언제나 떨리고,
누군가를 향해 진심을 건넨다는 건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사랑 앞에서 나 자신을 먼저 숨기지 않는다는 것.
도망치지 않고, ‘그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사랑해도 괜찮을까?’로.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말씀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
(요한일서 4:18)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랑은 언제나 상대를 향한 질문이기 전에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믿어볼 용기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


사랑을 망설이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 왔다.
미리 마음을 줄이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으려 애썼고,

괜찮은 척하며 내 감정을 스스로 무시했다.


그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방식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기보다는
조금씩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사랑을 피한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숨겨버린 셈이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그 숨김이 필요 없어졌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할 것 같았던 마음도,
강한 척 버티던 태도도 내려놓게 된다.


그분 앞에서는
사랑을 잘하지 못하는 나도,
자꾸 겁부터 나는 나도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받는 경험을 하고 나니
사랑에 대한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


완벽하게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
상처가 생겨도 대화를 멈추지 않는 사랑.

무너지면 다시 손을 내미는 사랑.


이제는 안다.
사랑은 언제나 잘 해내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넘어지면서도 계속 배우는 사람이 하는 거라는 걸.


그리고 그 배움의 출발점에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이 놓여 있다는 것도.

그래서 오늘의 나는

사랑 앞에서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예전처럼 닫혀 있지는 않다.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 보려는 이유는
이미 한 번, 조건 없는 사랑 안에서
안전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도 완성형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랑을 두려워만 하며 살기에는
이미 너무 큰 사랑을 받아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해 본다.
서툴러도, 느려도, 다시 사랑해 보겠다고.
내가 사랑의 근원이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사랑을 배운다는 건, 어쩌면 기다림을 배우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예전의 나는 기다림을 잘 못했다.
마음이 생기면 빨리 확인하고 싶었고,
확신이 없으면 그 불안함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 앞에서 조급해졌고,
그 조급함은 종종 관계를 앞서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기다리는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그 시간은 상대를 재촉하지 않는 연습이자,
내 마음을 함부로 던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다림 속에서 나는
‘지금 이 마음이 진짜인지, 외로움에서 나온 건 아닌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지 못했던 사랑들은
결국 무너진 경험으로 남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마음을 많이 쏟았다고 믿었던 관계일수록
끝나고 나면 공허함이 오래 남았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사랑 앞에서 항상 이렇게 아플까.’

무너진 뒤의 회복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은 건
상대에 대한 감정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기 때문이다.

또 믿었다는 것, 또 기대했다는 것,
또 마음을 내주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회복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랑에 실패한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한 순간.
그 관계가 나의 전부는 아니었고,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내 안의 사랑할 능력까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랑과 신뢰를 자주 혼동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랑하면 당연히 다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믿는다면 의심 없이 모든 걸 내어줘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랑은 마음의 방향이라면,
신뢰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깊이라는 것.
사랑은 비교적 빠르게 시작될 수 있지만,
신뢰는 충분한 관찰과 경험 속에서

천천히 쌓여야 한다는 것.


그 차이를 알게 되자
사랑이 훨씬 건강해졌다.
모든 걸 한 번에 주지 않아도 괜찮았고,
천천히 알아가도 불안하지 않았다.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의 시간은
의심의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며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무너져 울던 밤에도,
사랑과 신뢰를 구분하지 못해 헤매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늘 한결같은 태도로 나를 대하셨다.


조급하게 재촉하지도,
실망했다고 돌아서지도 않으셨다.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배운 건
사랑은 통제하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것이고,
신뢰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랑 앞에서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솔직해졌고,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다.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아니라,
‘배워가며 할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에 가깝다.

기다릴 수 있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사랑과 신뢰를 구분할 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안정된 마음으로 사랑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은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해서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전 09화「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