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38
짜라투스트라는 불평등이 정의 (正義)의 관점에 합당하다고 말한다:
" 정의는 나에게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Die Menschen sind nicht gleich.> 고 말했다. 또 인간은 평등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같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의 초인에의 사랑은 의의를 잃는 것이 아닌가? "(1)
여기서 정의란 어떤 정의인가? 그것은 생 (生: das Leben)을 향상시키는 것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다. 그리고 생을 향상시키는 경로는 짜라투스트라에 따르면 모순과 알력, 갈등으로 이뤄지는 계단이다.
“생(das Leben)은 계단을, 계단과 오르는 자들이 범하는 모순을 필요로 한다! 생은 오르고자 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고자 한다……아름다움 속에조차 싸움과 불평등이, 힘과 그 이상의 힘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 존재한다.” (2)
짜라투스트라는 우리도 생의 이러한 전쟁에 기꺼이 합류하자고 말한다:
“나의 벗이여! 우리도 또한 변함없는 아름다운 적이 되자! 우리도 신들처럼 서로 우세를 다투자! " (3)
물론, 초인(超人)과 최하급의 인간인 말인(末人: der letzte Mensche)은 결코 평등할 수 없다. 단순히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 말인으로부터 초인에 이르는 과정에 수많은 인간들이 있을 텐데, 이들 ‘과도(過渡)의 인간들’ 사이에 있다고 가정되는 불평등의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도의 인간들--대부분의 사람들--사이에는 선악, 빈부 등에서 현실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고, 이 차이가 알력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이 갈등, 알력이 생을 위로 향상시키는 계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차이들로 인해 갈등이나 알력은 있겠지만, 이 차이가 양립 불가능한 ‘모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숫자적인 지표로서 보이는 ‘차이’가 행정적인 ‘차별’의 빌미가 되어 제도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면 정의롭지 않다. ‘모순’의 문제는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런 불평등과 모순이 생을 향상시킨다면 매우 드물게, 그리고 아주 우회적으로 그리고 개인들을 가차 없이 희생시키면서 그렇게 할 것이다.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18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__ 정동호 역__169-170
(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