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37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평등이 깨어졌다고 생각할 때 사람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복수심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복수심은 평등에의 의지에 근거하고 있고, 또 이 의지를 키운다고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1)
복수심과 관련된 평등에의 의지는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 집착의 근저에는 병적 (病的)인 요소들이 광란처럼 이글거린다고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원한으로 바뀐 자부심, 억압된 질투…… 이것들이 …… 내심 (內心)에서 밖을 향해 화염이 되고 복수의 광란이 된다. " (2)
물론,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것처럼 불평등이 발생했다는 오해나 강박관념으로 인해 복수심이 생길 수도 있다. 복수하려는 자의 평등-저울은 자기중심적이고 엉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평등에의 의지는 간혹 모든 권력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의지가 되기도 한다. 권력의 기원이나 성격이나 행사 (行使)의 방법이 적법하고 무리한 점이 없어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나 집단에 만연한 불평등이 그 시대, 그 공동체의 상식이 납득할 수 있는 경로로 형성된 것인지는 늘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특정 기획자 혹은 특정 집단의 비밀스러운 혹은 뻔뻔한 개입에 의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 지 주의해야 한다. 물론 작위적으로 무너진 평등을 발견하더라도 개인은 무력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그나마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 기획된 시스템에서 언더독이 되는 것 자체가 열등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3)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17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17
(3) 평등에의 의지에 대한 니체의 견해를 놓고 성급히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 니체의 시대와 이 시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개인이 정의의 편에서 생존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