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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Feb 15. 2024

생명과 지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42

생명과 지혜


경쾌하고 활기차게 춤추는 어린 소녀들을 보며, 짜라투스트라는 ‘생명’과 ‘지혜’와 더불어 대화를 나눈다. (1) 


짜라투스트라:  그대의 눈동자를, 오오 생명이여! 지난날 나는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무한 속으로 가라 않는가 하고 의심했노라.   

생명:  모든 물고기는 그렇게 말하오 ……나는 다만 변하기 쉬울 뿐, 거칠 뿐.  

지혜: 그대 (짜라투스트라)는 의욕하고 그대는 사랑한다. 

        이 때문에 그대는 생명을 찬양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생명뿐.  더욱이 진실로 그것을 미워할 때에 더욱 사랑한다. 

        내가 지혜에게 다정히, 때로는 지나칠 만큼 돈독히 대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혜가 생명을 곧잘 회상시키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려 소녀들은 떠나고 생명의 활기가 사라지자, 무거운 지혜를 끌어안고 짜라투스트라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 짜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아직 살아있는가?  무슨 까닭으로?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연유해서?  어디로?  누구에게? 또는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 (2) 


생명은 소녀들의 춤처럼, 아기 신 큐피드처럼 ‘야단맞고 울면서도 사람을 웃게 하는’ (3)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본질에 있어서, 생명은 무한에서 무한으로 거칠게 치닫는다.  사람이 의욕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의 본질과 힘을 깨우쳐주는 것이 지혜다.  지혜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생명을 보좌하는 것이다. 


한편, 생명의 본질과 힘을 깨우쳐주고, 생명의 치솟음과 전진을 보좌하는 대신, 생명의 경쾌함과 활달함을 오히려 방해한다면, 지혜는 ‘중압 (重壓)의 영혼, 즉 악마’다. (4) 종종 우리는 거친 파도처럼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생명이 지혜보다 더 원천적인 것임을 잊고, 지혜를 너무 중시하는 나머지 생명의 빛을 가린다.  그러나 생명의 탄력성__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곧추서는 그 힘이 경직된 지혜와 사유의 촘촘한 망에 걸리거나 그 무게에 짓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생명의 빛이 없이 지혜의 빛에만 의존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것은 삶의 어두움 뿐이고, 이때 밀려드는 감정은 삶에 대한 회의다.  그럴 때 우리는 짜라투스트라처럼 "아직도 이렇게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하고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25-126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7

(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5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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