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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Mar 30. 2024

구제와 의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5

구제와 의지


짜라투스트라는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발달한 나머지 다른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결핍되거나 결손 된 인간들__ 전도된 불구자들__이 온전한 인간의 파편이나 단편처럼 온 세상에 널렸다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탄하는 짜라투스트라는 누구인가?  그는 유일하게 '온전한 인간'인가? 


니체는 인정한다.  짜라투스트라 역시 1인의 전도된 불구자라고.  그러나 덧붙인다.  단순한 불구자는 아니라고!!


"한 예언자...... 한 창조자...... 미래에의 한 개의 교량, 그리고 이 교량 옆에 있는 하나의 불구자 __ 짜라투스트라는 이상과 같은 모든 것이다."  (1) 


즉, 짜라투스트라 역시 전도된 불구자이지만, 동시에 예언자이자 창조자로서 각성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전도된 불구자들이라는 파편 혹은 단편과 같은 존재들을 재료로 삼아 미래에로의 교량을 준비해야 함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파편과 수수께끼, 그리고 끔찍한 우연 (2) , 이것들을 하나로 압축하여 모으는 일이 내가 밤낮으로 노심초사 도모하고 있는 것의 전부다.  만약에 사람 (Mensch)이 시인이나 수수께끼를 푸는 자가 아니며 우연을 구제하는 자가 아니라면 나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참고 견뎌낼 것인가!" (3) 


어떤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났다면 그 까닭이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라고 성서에 쓰여있다. (요한 9: 2-3)  과연, 시력을 되찾은 맹인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간증(干證)했다. (요한 9: 33) 육체적 불구를 치유하는 기적은 신의 소관이다.  그러나 전도된 불구를 치유하는 구제자는 신이 아니라 사람(Mensch)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인간의 구제자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구제자가 될 수 있게 하는가? 니체에 따르면 그것은 신적인 기적이 아니고, 인간이 갖고 있는 의지(意志)다. 


"의지 (意志)__ 해방의 환희를 가져오는 자는 이렇게 불리노라." (4) 


그러나 이런 의지조차 그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러했느니라>로 굳어진 과거다__구약성서에 흔히 나오는 투의 서술어처럼. 아무리 강한 의지도 과거지사에 맞닥뜨리면 무력하기 그지없다__산정에 올려놓은 돌을 지키려는 시지프스의 의지가 이미 돌을 굴려버린 흘러간 시간과의 싸움에서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렇게 거듭 좌절된 의지는 앙갚음이나 저주하는 정신이 되고, 허무주의자의 광기가 되는 비극적인 행로를 통과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지는 비애를 털어버리고 광기로 빠지는 비극적인 행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쉽게 공감하기 어렵고, 논리의 비약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아무튼 니체는 '그랬었다'를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라는 미래지향적인 의지로 변화시켜 모든 사태를 이끌 때 인간은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며, 과거와 섣부른 화해를 벌이지 말며 오히려 의지가 '과거와의 화해보다 더 높은 곳--권력, 힘, 창조, 수수께끼를 품, 우연성에서 벗어남, 구제 등등__을 의욕하게 하라고 한다. (5)


한편 도스토예프스키의 조시마 장로는 이렇게 조언한다.  비교해 보라.   "복종과 금욕과 기도가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오직 이런 것들 속에서만 그야말로 참된 진짜 자유로 가는 길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쓸데없고 불필요한 욕구들을 떨쳐내고 나의 자존심에서 비롯되는 오만한 의지를 복종으로써 다스리고 채찍질하여 이로써 하느님의 도움으로 정신의 자유에, 그와 더불어 정신적인 명랑함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6) 


언젠가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조시마 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8

(2) 어떤 필연성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수수께끼나 우연

(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 236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8  니체에 있어서 '의지'는 정신이나 이성보다는 육체와 결부되어 있다.  이 쇼펜하우어적인 생각이 니체로 하여금 권력이나 힘에의 의지를 강조하게 한다.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58-160  

(6)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II, pp.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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