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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Apr 21. 2024

그대는 그대의 위대한 길을 간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7

그대는 그대의 위대한 길을 간다


우리는 누구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그 세월의 많은 부분이 뚜렷한 목적도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떠돌면서 이것저것 시도하기만 하면서 허비한 시간이라고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주 다르게 열심히 살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허비한 시간을 두고 우리는 '방랑'의 시간이라고 가슴 아픈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런 '방랑'을 '자기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요약해 버린다. 


"나는 이제부터 어떠한 운명, 어떤 체험을 겪을지라도 그 속에는 방랑 (放浪)이...... 있다. 인간은 필경 자기를 체험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1) 


방랑의 마지막 지점에서 방랑자는 흩어졌던 자기 인생의 부분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예견했던 일이든 전혀 뜻밖의 일이든--을 그저 '나다운 것들'로서, 그러므로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필연적인 일들'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방랑자는 짜라투스트라와 함께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 


"이제 나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이 나에게 올 수 있으리오!...... 나의 자아(自我)와, 나의 자아에서부터 떠나가서 오랫동안 타향에 있었던 것과 나의 자아로서 모든 사물과 우연 사이에 흩어져 있었던 것__이것들이 마침내 나에게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2) 


니체를 연상시키며, 그러나 더 섬세하게 헤세는 방랑에 대해 썼다. 


"(방랑벽)은 언뜻 생각하는 것처럼 고통을 피해 멀리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삶의 새로운 비유들을 향한 동경이다.  그것은 집으로 데려간다.  모든 길은 집으로 데려가는 길, 모든 발걸음은 탄생이고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다." (3) 


종착지에 이른 방랑자는 자기 자신에게 도착한 것이다.  그 방랑이 아무리 방랑자를 외견상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방랑이야말로 인간이 자기에게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헤세는 방랑자를 예찬한다. 


"오, 방랑하는  도제들이여, 즐거운 떠돌이들아.  내 비록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 중 누군가에게 동전 5 페니를 선물해주는 경우라도 나는 너희 모두를 왕처럼 높이 우러러본다.  존경과 경탄과 질투심을 품고 바라본다.  너희 모두는 설사 가장 망가진 자라해도 보이지 않는 왕관을 쓰고 있다." (4) 


자기 자신에 도달한 방랑자는 더 이상 타인과 경쟁하지도,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타인과의 경쟁은 자기 삶의 일관성에서 동떨어진 것이 되어 버린다.  이제 그가 넘어서야 할 것은 타인의 업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현재'다.  그는 헤세가 말하는 '삶의 목소리' (5)에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 '자기의 위대한 길'을 계속해서 갈 뿐이다. 


"그대는 그대의 위대한 길을 간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 올라가야 하리라.  저 멀리__저 위로__자기의 별을 스스로의 발 밑으로 할 때까지 올라가야 하리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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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71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71

(3) 헤세, 나무들, p. 11

(4) 헤세, 나무들, <보리수 꽃>, p. 81

(5) 헤세는 <나무들>에서 방랑을 마친 노년에 들려오는 '삶의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쓴다: " 내 안에서 외치는 삶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  그것이 나를 (방랑과 같은) 즐거운 길거리에서 점점 더 멀리 어둡고 불확실한 것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그것을 따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 (이다.)"  나무들, p. 83-84   이 '삶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그것은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새로운 차원이 시작되는 때리라. 

(6)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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