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에 끝이 피어났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한 번 잔인한 달이 다가왔다.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 따스한 봄바람과 더불어 이제는 꽃들이 개화할 시기이다. <멜랑콜리아>의 이야기는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의식, 즉, 결혼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저스틴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후반부는 클레어에 치중되어 있다. 둘을 하나로 엮는 것은 자매라는 혈연 이외에는 '우울증'이라는 공유된 증상이다. 이 우울증은 거대한 행성으로 시각화되어 영화에 드러나며, 다가오는 종말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분명 결혼식은 축복받아야 할 성대한 행사이나, 어째서인지 저스틴은 지속적으로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남편이 될 마이클은 그런 그녀를 어떻게든 달래 식을 무사히 치르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 찬란히 피어나야 할 부부의 탄생이라는 의식에 불안이 내포되어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는 영화의 제목 <멜랑콜리아>와 맞물리며, 일종의 '메리지 블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저스틴이 앓고 있는 증상이 단순 혼전우울증이 아님을 드러낸다. 저스틴은 이미 깊은 우울감에 잠식되어 고통받고 있으며 무너져 가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저스틴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클레어의 남편 존은 이러한 기행을 보이는 저스틴을 이해하지 못하며 못마땅해한다. 그에게 있어서 저스틴은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치르는 결혼식을 망치는 철부지 처제일 뿐이다.
직감적으로 세상의 끝이 다가옴을 느끼는 저스틴과 달리, 클레어와 그 남편 존은 그것에 무감각하다. 정확히 클레어는 다가오는 행성이 끔찍한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지만, 존은 이를 지나친 예민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사실 두 파트로 나뉘어진 이 영화에서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이는 저스틴과 클레어라기보단 저스틴과 존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클레어는 외려 저스틴으로부터 우울증이 '옮은' 이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클레어에게 끼쳐오는 영향을 두고는 저스틴과 존이 체스와 같은 알력싸움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점차 스며들어오는 저스틴의 우울과 불안이 클레어에게 뻗쳐오는 것과 대조적으로 존은 그러한 불안은 실체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쪽이다. 그러나 안심을 시키기 위한 몇 마디 말은 진득한 우울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이 스며들어온 우울은 두 가지 대조된 결과를 이끌어낸다. 이미 모든 것의 종말을 받아들이고 평온을 되찾은 저스틴과 달리 존은 패닉에 빠져 약을 통째로 삼키는 자살을 택한다. 우울증이 결국 '체크메이트'를 외치는 순간이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 몰고오는 세상의 끝은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으나, 이를 안일하게 바라보던 이에게는 견딜 수 없는 거대한 시련인 것이다. 녹음이 짙은 <멜랑콜리아>의 배경엔 이제 각종 파괴의 징후가 불꽃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애써 부정하려 했던, 그리고 도망치려 했던 클레어는 결국 이 파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더 이상 불안을 막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우울은 타르와 같은 가연성을 띠며 그 위로 절망이 빠르게 번져나간다. 저스틴의 손에 이끌려 그녀는 나뭇가지로 '마법 동굴'을 짓고 저스틴, 그리고 그녀의 아들 레오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초연한 자세로 이를 받아들이는 저스틴과 본능적인 공포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클레어와 눈을 감은 채 천진한 모습을 보이는 레오를 향해 새파란 행성이 다가온다. 이윽고, 쾅! 암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사라진 영화의 세계, 그 자리에 찾아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요이다. 그렇게 영화는 암전과 고요로써 마침표를 찍는다.
샨티, 샨티,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