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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더스 단평

<감독이 마지막 승부를 통해 관객과 포커를 한다>

by 조성현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글을 쓰는 데 있어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글에 있어서는 스포일러를 하겠다는 양해를 구하려 한다. 다루려고 하는 시퀀스가 영화 <라운더스> 최후의 승부 장면이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이 1998년 작품이기에 다소 스포일러에 대해 관대하지 않을까하는 안일함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부디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스포일러에 다소 예민한 분들이라면 이 글을 보지 않기를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해당 장면에 대해 주변 지인에게 물었을 때 지인은 내게 이 글을 쓰기 앞서 만류하며 이러한 말을 했다. "테디 KGB(존 말코비치)는 피쉬(쉽게 돈을 잃는 초보자)야." 실제로 취미 중 하나가 홀덤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테디 KGB는 허술한 인물이라는 뜻이고, 홀덤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승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해 보일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나는 포커를 잘 치지 않는 편이기에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연출에서의 심리전과 연출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다 느낀다.


마지막 승부 장면을 들여다보자. 마이크가 테디와의 첫 승부에서 다소 싱겁게 승리를 거두자 테디는 마이크를 도발해 다시 테이블에 앉히고자 한다. 마이크는 잠시 고민하지만 이내 영화의 초반부 자신이 테디에게 당해 거금을 잃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만회하기 위해 다시 테이블에 앉는다. 게임이 진행되는 도중, 테디는 오레오 하나를 집어 귀에 가져다대고 반으로 나눈 뒤 크림이 덜 묻은 부분을 천천히 씹어먹기 시작한다. 마이크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폴드를 선언한다. 그리고는 테디의 패가 무엇인지 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해당 장면에서 마이크의 패는 에이스와 5로 꽤 좋은 핸드이다. 테디는 이를 보고 '저 핸드를 가지고 폴드한다고?'라며 의문을 표한다. 잠시 의아해하던 테디는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격앙된 표정으로 자신의 곁에 있던 오레오들을 던져버린다. 이윽고 마이크는 나레이션으로 "드디어 KGB가 허점을 드러냈다. 보통 때라면 그가 과자를 다 먹도록 내버려두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게임이 진행되고 테디는 투덜거리며 마이크에게 핸드를 나누어준다. 플랍으로 각각 6, 7, 10이 놓이고 마이크는 핸드로 8, 9를 쥔다. 이미 스트레이트 완성이다. 게임이 시작하자 테디는 판돈을 올리고 마이크는 "칩 던지지 말아요, 테디."라고 이야기한다. 테디는 "이곳은 내 클럽이니 칩을 어떻게 놓든 그건 내 마음이야."라고 응수한다. 레이스가 이어지는 동안 마이크는 계속적으로 '체크'를 외치며, 테디는 판돈을 계속 올린다. 마침내 테디가 자신의 모든 판돈을 걸어오자 마이크는 자신의 모든 칩을 밀어넣으며 스트레이트임을 밝힌다. 이를 확인한 테디는 욕설을 외치며 격분한다.


분석을 위해 장면을 다소 길게 묘사했다. 이 길게 늘여놓은 텍스트에서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의구심은 '과자의 역할'이다. 어찌 보면 이 '오레오를 좋아하는 갱단 두목'이라는 설정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부에부터 테디와 오레오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연출된다. 마이크가 테디에게 돈을 전부 잃는 상황 역시 테디가 위 장면에 묘사한 반으로 나누는 행위를 한 이후에 일어난다. 그렇기에 관객은 테디가 오레오를 반으로 나누는 습관을 텔(자신의 패를 드러내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레이스에서 마이크는 테디가 오레오를 던져서 없애버렸음에도 승리한다. 이 승리의 비밀은 사실 그 승부의 대사에 들어있다. 그 대사는 바로 "칩 던지지 말아요, 테디"이다. 마이크는 분명 나레이션으로 "마음만 먹으면 그가 과자를 다 먹도록 내버려두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문장은 달리 말하면 과자가 아닌 다른 포인트에서 테디가 약점을 노출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이전의 게임에서 테디를 자세히 관찰하면 알 수 있다.


테디는 판돈을 거는 과정에서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나도록 칩을 거칠게 내려놓는다. 즉, 마이크는 테디가 좋은 핸드를 들고 있을 경우, 거칠게 테이블 위에 칩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런 맥락으로 보자면, 언급한 대사 "칩 던지지 말아요, 테디"는 테디의 매너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쥐고 있는 핸드가 무엇인지 너무나 티가 납니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관객이 텔이라 인식했던 오레오를 반으로 나누어 먹는 행위는 정작 연출상에 심어놓은 블러핑이다. 감독은 마지막 승부라는 포커 테이블로 관객을 인도하고 그들을 상대로 블러핑을 시전한다. 누군가는 이 트랩에 마치 테디처럼 걸려들길 바라면서 말이다.


덧붙여서 과연 테디가 들고 있던 핸드가 무엇이냐에 대한 공식적인 답안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핸드는 에어라인(에이스 2개)이라고 확신한다. 에어라인이라면 어째서 테디가 칩을 거칠게 내려놓는 행위 이상으로 테이블 위에 던지는 행위를 했는지, 칩을 몽땅 몰아넣은 뒤 "너에게 에이스는 아무 쓸모가 없을거야."라는 대사를 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스페이드 에이스가 플랍에 떨어지는 순간 테디가 이를 천천히 내려놓는 장면을 클로즈업했는지 전부 설명이 된다.


에어라인은 포커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를 가진 핸드로 알려져 있다. 이 핸드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에이스 원 페어가 완성되며 이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가 높다. 이 상황에서 테디는 칩을 던지는 행위는 위에 분석한대로 사실상의 승리선언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테디가 스페이드 에이스를 플랍하는 순간 카메라는 카드를 잡은 테디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테디는 매우 천천히 카드를 내려놓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디의 핸드가 에어라인이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는 그의 대사이다. 흔히들 말하는 추측으로 테디는 에이스와 9를 들고 있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경우 테디는 패를 공개하기 전 "너에게 에이스는 아무 쓸모가 없을거야."라고 하지 못한다. 이 경우, 만일 마이크가 에이스와 10을 들고 있다면 마이크가 이기는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이 대사가 나올 수 있는 맥락은 오직 단 하나, '마이크가 에이스를 쥐고 있어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야만 가능하다.


플랍으로 놓인 카드는 각각 6, 7, 10, 2, 스페이드 에이스이다. 트럼프 카드의 에이스 카드는 총 4장이다. 이 상황에서 테디가 만일 에어라인이라면 에이스 트립스가 완성된다. 이 경우, 마이크가 에이스를 핸드에 쥐고 있다면 마이크는 어떠한 다른 카드를 쥐고 있더라도 테디에게 반드시 패한다. 최고로 만들 수 있는 경우는 앞서 언급했듯 에이스, 10 투 페어이지만 이는 에이스 트립스보다 가치가 낮다.


영화는 관객을 분석의 영역으로 몰아넣는다. 오레오가 아닌 다른 텔이 무엇인지 관객을 고민의 영역으로 밀어넣으며, 테디의 패가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를 추측하는 방향으로 끌어들인다. 심리전을 하는 대상은 마이크와 테디만이 아니다. 이 곳곳에 던지는 블러핑으로 감독은 관객에게 승부를 걸어온다. 그리고 실제로 감독은 이러한 블러핑이 관객에게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퀀스 자체로 포커의 메타포를 작성해낸 것이다. 그렇기에 <라운더스>의 최후의 승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블러핑과 심리전으로 관객까지 포커 테이블에 앉힌 치밀한 설계였음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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