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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

<네가 태어나던 날, 모순들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쳤단다.>

by 조성현

극장에 들어가기 앞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은 과연 디즈니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원작 <백설공주>를 아는 사람으로써(알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만은) 주요 장면 중 하나는 왕비가 마법 거울을 마주하고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장면이다. 과연 현대의 디즈니는 이 장면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심히 궁금해졌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사실 어떠한 답이 나와도 굉장히 곤란해진다.


1. 만일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는 대답이 나온다면, 실사화된 <피노키오>와 같은 작품에서부터 외적인 요소보다 내면의 순수성과 선량함을 강조해온 디즈니의 지속적 메시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장면이 나와버린다. 그 순간 극의 설득력은 크게 떨어진다.


2. 반면, 왕비가 더 아름답다는 대답이 나온다면 왕비로서는 백설공주를 해칠 이유가 사라진다. 왕비라는 인물은 미모라는 것에 집착하는 인물이니만큼, 미모라는 이유 외에 백설공주를 해칠 개연성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즉, 극은 거기서 더 이상 전개되지 않는다.


3. 해당 장면을 아예 삭제해버리는 경우, '백설공주'라는 아이피를 굳이 사용하여 영화를 제작할 이유가 사라진다. 원작에 있어 크게 상징적인 장면을 삭제해가면서까지 디즈니에게 '백설공주'라는 영화를 실사화해 제작할 이유는 없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디즈니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의문을 품고 극장에 들어서기로 마음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즈니의 나의 이러한 우려섞인 의문을 해소하는 데에 실패했다. 디즈니가 택한 방식은 위의 세 가지 방향 중 첫번째에 가깝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내오던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던 디즈니는 원작의 장면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뒤섞기를 결정했고, 이는 오히려 중대한 모순을 발생시키고 말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 거울의 시퀀스는 총체적 난국이다. 백설공주는 성 안으로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이 성문에 묶이는 형벌에 처해지자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그 모든 장면을 왕비는 성 위에서 지켜본다. 이 일을 보고 분개한 왕비는 거울의 방으로 뛰쳐들어가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울은 그 질문을 듣고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의 조건이라며 백설공주가 왕비보다 아름답다는 답을 한다. 이 대답을 들은 왕비는 절규한다.


첫째로, 어째서 도둑의 주변에 경비병이 단 한명도 없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도둑은 외투와 신발이 벗겨진 채 성문에 묶이는 형벌을 받는다. 보통 왕가의 재산에 손을 댄 이에게 형벌이 주어진 경우, 반드시 그 근방엔 간수, 혹은 경비병이 서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개 하녀로 전락한 백설공주가 그에게 다가가서 풀어주기까지 그녀는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는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연출이다.


그 광경을 다 지켜본 왕비가 어째서 거울의 방으로 들어갔는지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왕비의 입장에서 이는 명백히 자신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이다. 그런데 왕비가 그 광경을 본인의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한 일은 측근이나 경비병을 불러 백설공주를 체포하는 것이 아닌, 거울의 방에 들어가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묻는 것이다.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이다. 과연 누가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이 자신의 권위가 위협받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진 질문인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것은 거울의 대답이다. 분명 백설공주가 장성하기 전까지 거울은 왕비가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 말인즉슨, 여지껏 거울에게 있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내면은 작용하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왕비는 명백한 악인이다. 그녀가 권력을 잡음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묘사는 분명히 나온다. 그렇다면 왕국엔 그녀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화물트럭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을 것임이 자명하다. 만일 여태 내면의 아름다움이 그토록 중요했다면 왕비는 자신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학살하는 소위, '킬링필드'라도 벌였단 말인가. 아니, 그렇다해도 다른 국가에 있는 선량한 이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했다는 말인가.


거울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미의 기준으로 적용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왕비가 해야할 일은 백설공주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수리하는 것이다. 애시당초 왕비에게 있어서 내면의 아름다움은 중요성 자체가 크지 않다. 이는 그녀 스스로가 극중 끊임없이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며 그렇기에 거울의 대답은 왕비가 분노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들은 엉켜 영화의 설득력을 크게 떨어트린다.


<백설공주>라는 원작에 디즈니는 현대적인 가치관을 부여하여 새로운 실사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영화는 첫 단추부터 잘못끼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공주의 피부색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태어났다는 설정을 덧붙인다. 그러나 자애롭고 자비로우며 애민정신이 넘치는 왕과 왕비가 혹독한 날씨를 기념하여 공주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부터가 어딘가 어긋나있다. 즉, 적어도 이 '실사화'는 처음부터 모순을 안고 시작해버렸으며, 끝끝내 계속적인 모순들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녀가 태어났던 날, 몰아닥쳤던 것은 어쩌면 눈보라가 아닌 모순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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