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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 이야기

<두 축의 충돌, 그리고 스파크>

by 조성현

내러티브를 되짚어보면, 이 영화의 제목은 상당히 기묘하다. <그랜드투어>라는 제목을 구태여 해석하자면 '위대한 여정' 정도의 의미로 마치 무언가 웅장한 서사를 펼쳐나갈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적인 플롯은 결혼을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남성과 그를 쫓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는 분명 위대한 여정이라 보기에는 어딘가 어긋나 있다.


이 아이러니한 제목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상당 시간을 카메라에 내러티브를 담지 않는다. 정확히는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동안, 초점이 맞추어진 인물이 방문했던 국가의 현재적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현재라는 시간선에 카메라를 맞추는 동안, 내러티브를 흘러가게 만드는 요소는 나레이션이다. 그리고 그 나레이션은 해당 국가의 언어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버마(미얀마)에서 시작된 에드워드의 여정은 태국과 사이공(베트남)을 거쳐 일본과 중국에까지 이른다. 이 여정의 흐름에서 등장하지 않는 국가 중엔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 미겔 고메즈라는 감독이 한국을 싫어해서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중심 내러티브를 따라가면 당시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고,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영화 내부의 시대적 상황을 드러내는 장치들과는 별개로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동안 비추어주는 카메라는 명백히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베트남을 비춰주는 시퀀스는 다수의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을 비추어주며, 중국의 경우는 패딩을 입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과거에 초점을 맞춘 시네마적 축과 현대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적 축이 동시에 병행되는 구조를 가진다.


흑백의 처리가 된 두 개의 축은 플롯이 진행되는 동안 평행선을 달리듯 나란히 관객들에게 선사된다. 시간이라는 벽을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마치 결혼이 두려워 도망치는 에드워드와 그를 쫓는 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과거에 맞추어진 내러티브를 관객은 부지런히 쫓지만, 번번히 마주하는 현재의 모습은 다소 그들에게 당혹감을 선사한다.


이 포인트에서 관객이 가질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구태여 티켓값을 지불하면서까지 흑백의 기행문을 관람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 양태의 기행문을 관람하는 것은 차라리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TV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화면도 컬러이며 설명도 상세하므로.


그러나 후반부, 감독은 이 결코 맞닿을 수 없을 것 같이 평행선을 달리던 두 축 중 하나를 기울여 일시에 충돌시킨다. 과거의 내러티브 속으로 현재의 이미지가 틈입되는 그 충돌의 순간, 스파크가 튀며 영화는 광원을 찾는다. 그제야 관객들은 제목의 의미를 이해한다. 위대한 여정을 나서는 이는 도망치는 에드워드도, 그를 쫓는 몰리도 아닌다. 교차하는 시공간에서 '위대한 여정'을 떠나고 있는 이는 은막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미겔 고메즈는 우리를 바로 그 여정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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