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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소년 이야기

<중력을 잃은 천체가 다시 이를 찾을 때까지>

by 조성현

지구는 태양을 돈다. 태양은 강력한 중력으로 태양계 내의 행성들을 끌어들인다. 인력의 지속적 작용으로 인해 천체는 그 주위를 돈다. 우리는 이를 '공전'이라 부른다. 공전은 강력한 약속이다. 소위 지구종말 혹은 재앙을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대다수는 영화 <코어>(2003)와 같이 '자전'의 정지를 소재로 다룬다.


공전을 멈추고 지구가 태양계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한 광대한 범위의 종말을 소재로 서사를 써나간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는 인간의 무력함만을 드러낼 것이 자명하기에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닌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 명확해 보인다.


천체가 그 인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그렇듯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을 의미한다. <자전거를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 역시 그를 잡아주던 '부모'라는 이름의 항성을 상실한 존재로 보인다. 매정히 시릴을 떠나버린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떠한 연락없이 그에게서 잠적해버리며,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자전거'마저 몰래 판매해버린다.


항성을 일순간에 상실해버린 천체는 패닉에 빠진다. 그를 붙잡으려 두는 보육원 선생들로부터 도망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 잠입하고, 선생들로부터 도망치던 과정에서 1층의 병원에 방문했던 손님, 사만다를 붙잡는다. 예기치 않게 발견된 새로운 항성, 사만다는 시릴에게 자전거를 되찾아주며 중력을 작동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새로운 항성의 궤도에 정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만다는 시릴을 자신의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이지만, 시릴은 여전히 과거의 궤도에 미련을 두고 표류한다. 이 표류의 과정에서 시릴은 한 불량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이른바, '탈선'의 길로 빠져든다. 궤도를 이탈하여 다시금 저 광활하고 캄캄한 우주 속으로 떠나가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항성 사만다는 강력한 중력으로 그를 다시금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끊임없는 믿음과 애정, 그리고 포용으로 시릴은 차츰 새로운 궤도에 자리를 잡아가고자 한다. 시릴이 과연 새로운 궤도에 안착했는가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만다가 만들어내는 애정이라는 이름의 중력이 가지는 위력을 관객은 이미 확인했다. 자전거 위의 소년, 시릴이 이제 더는 새로운 공전의 법칙을 어기지 않으리라, 그렇게 믿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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