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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2(2025) 이야기

<N극과 S극은 원래 끌리기 마련이니까>

by 조성현

홉스와 와일드, 와일드와 홉스. 토끼와 여우 콤비가 돌아왔다. 사실 <주토피아2>(2025)는 1편의 중심적 메시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은 플롯을 취한다. 여전히 그들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며,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주제를 설파한다. 다만 1편인 <주토피아>(2016)에서 그 소수자 역할을 맡은 것은 '약하다'라는 편견의 대상 토끼, 주디 홉스와 '교활하다'라는 편견의 대상인 여우, 닉 와일드라는 주인공이 그 소수자의 역할을 맡는 것에 반해, 2편에서의 편견의 대상은 새로운 등장인물인 뱀, '개리 더 스네이크'가 그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 정도이다.


그렇기에 1편과 2편의 거의 10년에 가까운 간극을 생각한다면 중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다지 참신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말하자면, '주자'는 바뀌었지만 '주제'는 그대로인 순환 구조이므로. 그런 관계로 이번 글에서 그 점을 구태여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뻔하디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1편에서 다소 은밀하게 심어두었던 닉과 주디의 커플 코드가 2편에서는 다소 더 진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둘은 공식적으로는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영화의 내부에서 둘을 단순히 직장동료라는 의미에서의 파트너로 받아들일 관객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주디와 닉이 파트너로 지정되어 서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잠입을 시도하는 순간, 그들이 변장한 모습은 아이까지 있는 사이좋은 부부이다. 1편에 등장했던 닉의 동료에게 아기 역할을 다시 맡기면서까지 말이다. 적어도 <주토피아>의 세계관에서 종의 다름이 부부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는 어색함, 혹은 금기가 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잠입의 목적인 지명수배자마저 이를 지적하지 않으며 외려 '아이가 원한다면 기꺼이 부탁을 들어드려야죠'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는 그 도입부에서의 커플의 정당성을 은근히 코드로 도입한 이후, 주디와 닉을 단순한 업무 상의 파트너만으로는 바라보게 하지는 못하는 포인트들이 곳곳에서 드러낸다. 예컨대, 영화의 중심적 미장센이자 수수께끼의 열쇠인 연구 일지를 지키기 위해 잠입하는 순간, 연회장에 들어서기 위해 주디는 닉에게 턱시도를 건네고 본인은 드레스를 입는다. 그야말로 각종 시네마에서 보이는 첩보 액션에서의 로맨스를 드러내는 고전적인 클리셰이다. 더욱이 닉이 감옥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주디에 대한 소중함을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업무 파트너로 보기에는 오묘한 대사들이 쏟아져나온다. 명백히 '우정'이라기보다는 '애정'에 가까운 모습이다.


둘의 로맨스가 어쩌니 저쩌니, 그것이 옳으니 그르니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다. 영화는 영화다. 주목하고픈 것은 토끼와 여우라는 종의 차이가 아니다. 정확히는 둘의 '다름'이다. 영화는 둘의 기상장면을 한 화면에 분할하여 보여줌으로써, 둘의 대비를 명백히 드러낸다. 기상하여 경찰서라는 장소로 출근하기까지 주디는 의욕적이고 활달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닉은 다소 늘어지고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 파트너십에 대한 상담이 끝난 후, 주디는 닉과의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꼼꼼히 읽어가며 학구열을 불태우는 반면, 닉은 책을 들여다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책상받침으로 쓰는 모습이다.


그렇게 다른 둘은 영화 내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다. 1편에서 드러났던 둘의 다름은 종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드러났다면, 2편은 ‘종의 차이’라는 표면적 구도를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두 인물의 내재된 성향 차이를 전면에 배치한다. 더이상 종의 차이라는 것은 다름의 이유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다름은 결국 영화의 중반부 큰 갈등의 이유가 된다. 주디의 입에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다른 것 같아.'라는 말이 나옴으로써.


그러나 다름이 둘을 갈라놓지는 않는다. 분명 닉은 주디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왜 도망치지 않느냐라고 채근하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말리기는 할지언정, 절대 그녀를 떠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녀의 곁에 머무르기를 택한다. 자신이 내키지 않는 길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감옥에서의 고백을 통해 그 이유는 드러난다. '내게 있어 가장 큰 공포는 그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서. 이것이 명백한 애정으로 해석된다는 점은 차치하고 다른 점에 주목해서 보고자 한다. 어째서 닉에게 있어 주디를 상실하는 것은 가장 큰 공포가 되었는가.


애정을 생성하는 데 있어 크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는 상대가 나의 결핍을 충족해준다는 조건을 갖출 때이다. 주디는 명백히 닉의 결핍을 건드리고 동시에 충족해주는 존재이다. 닉은 1편, <주토피아>에서는 ‘기대하지 않기’를 통해 자신을 방어하던 캐릭터였다. 세상이 자신을 교활한 여우로 규정한다면, 그는 그 편견에 체념한 채 살아남는 길을 택해왔다. 다시 말해, 닉은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는 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주디는 닉이 가장 철저하게 봉합해두었던 지점을 건드린다. 그녀는 그가 체념했던 세계를 다시 향하도록 만들고, 닉이 버려두었던 ‘가능성’이라는 감각을 되살린다. 주디와 함께하는 순간, 닉은 더 이상 냉소로 무장한 여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된다는 사실을 학습한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주디는 단순한 동료 이상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녀는 닉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유일한 타자가 된다.


주디에게도 닉은 단순한 조력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주디는 태생적으로 성실하고, 목표지향적이며,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강점은 동시에 취약점이 되기도 한다. 주디는 세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놓치고 있는 현실의 질감이나 타인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닉은 바로 그 지점을 보완하는 인물이다. 그는 주디가 지나치게 앞으로만 나아가려 할 때 속도를 늦추게 만들고, 그녀가 부정적인 현실을 지나치게 순진한 시선으로 해석하려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탄생한다. 즉, '다름'이 그들을 완성한다. 주디가 말하는 '우리는 너무 다른 것 같아.'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우리 둘은 차이로 인해 어울리지 않아로 해석될 수 있으며, 관객에게도 그렇게 다가갈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 다름이 바로 둘을 연결하는 열쇠이다. 즉, 그 대사는 '우리가 달라도 괜찮아.'가 아닌, '우리는 다르기에 함께 할 수 있어.'가 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주토피아> 시리즈의 전체적인 메시지인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와도 연결이 된다.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는 있겠다. 분명 토끼와 여우는 종이 다르다. 아니, 그 이전에 개별적인 인물로써의 캐릭터 역시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석은 N극과 S극이 끌린다. 그리고 이의 우열을 나누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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