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보(2025) 이야기

<한 쪽 날개로 나는 새>

by 조성현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신화에는 비익조라는 새가 있다. 새는 하나의 눈과 하나의 날개만을 가졌으며, 둘이 한 쌍이 되어야만 날 수 있다고 한다. 짝을 잃은 새는 날지 못 하고, 땅에서 비운의 삶을 보내다 죽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비익조의 평생의 숙원은 자신과 반대쪽의 날개를 가진 짝을 찾는 것이고, 이를 찾을 때에야 저 넓은 창공을 누빌 수 있게 된다.


타치바나 키쿠오는 계속적으로 짝을 찾고 잃는다. 짝이라는 것은 단순 그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하루에가 그에게 일견 짝으로 보이기도 하나, 내러티브가 전개될 수록 관객은 그의 짝을 다른 이로 인식한다. 그는 바로 그의 스승인 한나이 한지로의 아들이자 키쿠오의 친구인 오가키 슌스케이다. 부모를 잃은 키쿠오는 한지로의 집에 살며, 그의 제자가 되고 한지로의 후계자인 슌스케와 우정과 함께 묘한 경쟁심을 키워나간다.


한지로가 교통사고로 인해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자, 그의 대역을 누가 맡게 될 것이냐가 화두에 오른다. 가부키의 세계의 암묵적 룰에 따라 그의 아들 슌스케가 그 대역을 맡게 될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한지로는 자신의 핏줄이 아닌 키쿠오에게 그 자리를 맡긴다. 사실상 후계자 자리를 그에게 낙점한 것이다. 슌스케는 낙담하지만, 키쿠오에게 크게 화를 내지 못한다. 키쿠오가 대역으로써 무대에 오르기 전, 부담감과 공포로 떨고 있자 슌스케는 그에게 다가가 붉은 눈화장을 칠해준다. 그 때, 키쿠오는 슌스케에게 자신이 지닌 질투를 고백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피야. 네 피를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라는 말로.


슌스케는 가부키 세계에서 지켜지는 혈연의 전통을 깰 정도의 재능을 가진 키쿠오를 질투하면서도 인정하고 부러워한다. 반면 키쿠오는 재능이 아닌 혈통이라는 명분을 가진 슌스케를 부러워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갖지 못 하는 두 인물은 '탄바야의 후계자'이자 '한나이 한지로'라는 예명의 계승자라는 타이틀을 두고 갈등하고 결국 갈라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키쿠오와 슌스케가 한지로의 지도 아래에 있던 시절, 둘은 각각의 예명, '토이치로'와 '한야'의 앞글자를 딴 '토한콤비'로 불렸으나, 둘이 갈라선 후 재회했을 때, 키쿠오는 '한나이 한지로'라는 예명을 계승한 자로써, 그리고 슌스케는 기존의 자신의 예명 '한나이 한야'로 각각 앞글자를 따 '한한콤비'로 불린다. 그리고 '한한'은 음독으로 '반반'이다.


각각의 절반이 합일을 이룰 때 비로소 단일의 개체가 된다. '온나가타'라는 여인을 연기하는 두 남성 배우는 여성의 정체성을 연기하는 라이벌이었으나, 더이상 경쟁을 할 이유가 없어진 순간 같은 온나가타로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 각각 남과 여의 역할을 맡으며 한 쌍의 연인으로 무대에 오른다. 영화에서 키쿠오가 남성의 역을 맡는 것은 이 무대가 유일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 하는 남녀가 도피하여 함께 자살을 택한다는 가부키의 내러티브를 좇아, 그들은 마치 사랑하는 이를 다루듯 최후의 순간 서로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반쪽을 잃어버린다는 그 고통을 절감하듯이 말이다.


키쿠오는 슌스케가 그토록 바라던 재능을 발휘하여 슌스케가 끝내 도달하지 못 하는 '국보'의 자리에 오른다. 반면, 슌스케는 키쿠오가 소중히 여기던 하루에와 결혼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가족의 일원으로써 죽는다. 그 아내와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로써 남은 슌스케와는 달리, 키쿠오는 예술가로서 정점에 오르나 가족의 일원은 되지 못하는 기구한 삶으로 나아간다. 그의 딸, 아야노에게 "악마와 거래했어.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된다면 그 무엇도 필요없다고."라는 말로 매정하게 돌아설 것을 예고한 키쿠오에게 아야노는 "악마에게 감사하세요."라는 차가운 말을 던진다.


그토록 짝을 찾아 헤메던 키쿠오는 결국 그 누구와도 짝을 이루지 못 한다. 아니, 그토록 원하던 짝을 잃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비익조는 짝을 잃으면 땅에 추락해 죽는다지만, 짝을 찾았음에도 날지 못하는 새는 더 비극적이다. 그러나, 한나이 한지로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키쿠오라는 이름의 예술가는 짝을 잃었음에도 비상한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것은 백로라는 이름의 한 마리 새이다. 인생을 동고동락할 짝을 잃어버린 새는,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써 완벽하지 못 했던 예술가는 극의 끝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비익조가 아닌 백로가 되어 비상한다. 이 모순된 비상의 순간에, 그의 삶은 예술가라는 존재의 비극적 정의에 닿는다.


한 쪽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는, 그래서 아름답고 기묘하며, 또 처연하다.

작가의 이전글프랑켄슈타인(2025)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