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신성한 이에게 생명이 주어지고 사람들이 제각각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어느 공휴일의 길목, 상실을 겪어야만 하는 이가 그야말로 '개같은 날의 오후'에 이 글을 쓴다.
너를 처음 본 순간 집에서 뛰어다니던 순간을 기억한다. 적응기랄 것도 없이 집 안 여기저기를 누비는 너를 보며 바로 그 순간부터 너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내가 뛰면 너는 웃음 띤 표정으로 나를 따라 뛰었다. 몸을 뒤로 돌려 뛰면서 네게 '이리와'라고 하면 너는 날 따라잡겠다는 듯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이제는 그 다리는 앙상해졌고 축 쳐져 있다.
네가 온 순간은 기억하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무심함 때문일수도 있겠다. 그토록 비정한 인간이기에 유독 엄하고 무서운 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달라고 떼쓰면 안 돼!라고 하면서 너를 혼내곤 했다.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다 흩뿌려 놓으면 사고쳤냐면서 윽박지르곤 했다. 그래서 내가 안으려 하면 앞발로 날 밀치며 이러지 말라는 듯이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모두 싫었다고 한들 이런 식으로 갚아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너는 이제 그 몸을 누이고 가쁜 숨만을 몰아쉬는 방식으로 잔인한 작별인사를 건넨다. 참으로 불공평하다. 그 기뻐야 하는 날에 나는 너를 죽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정 그렇게 가고 싶었다면 몇 달이라도 뒤에 인사를 건네도 괜찮지 않을까. 매년 돌아오는 시기를 온전히 안식하지 못 하게 하는 너의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인사를 조금이나마 늦춰주길 바란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겠다.
네 이름을 부르고 손을 얹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을 바라본다. 앙상해진 몸과 멀어 버린 눈을 본다. 네가 곁에 있길 바라지만, 내 욕심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차라리 그 고통을 끝내 주는 쪽이 옳은가도 숙고한다. 너를 안고 다닐 때의 그 묵직했던 무게감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없이 가벼워졌구나. 그런데 어째서 더욱 무거워지는 느낌일까.
이제 너는 곁에 없을 것이다. 온전한 상실을 겪어야만 하는 날이 다가온다. 참으로 추운 바깥의 나날, 모두가 제각각의 따스함을 찾아 움직이는 그 날, 내게 부는 바람은 차다. 그 어느 날보다도 춥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다. 참으로 '개같은 날'이다. 그러나 감내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너는 너의 길을 가면 된다.
내 새끼, 고생했다.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