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

K라는 글자로 바라보는, 영화라기보다는 그 뒷이야기

by 조성현

넷플릭스에 방영하기 시작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는 분명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작품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며 그 시청률은 나날이 고공행진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헌트리스'라는 이름의 아이돌 그룹이 음악의 힘으로 악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라는 설정은 그 중심 메시지가 얼마나 참신했느냐 그 이전에 많은 이들에게 '재미'의 요소로 와닿았다. 이러한 대성공 뒤에 한국의 언론들은 앞다퉈 그 성공을 찬양했으며, 성공의 요인을 아예 특집까지 내어 분석하기에 이른다. 분명 '케이팝'을 소재로 하였으나 엄연한 미국의 작품임에도 말이다.


오늘날 미디어는 K라는 글자에 유독 몰두하는 모양새이다. 영화의 도입부, 헌트리스가 무대에 오르기 전 먹던 김밥과 라면 등을 향해 'K푸드'라고 이름을 붙이며 이를 섭식하는 유행을 두고 'K푸드 열풍'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보도한다. 음악에 있어 K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음악을 두고 브릿팝, 일본의 음악을 두고 J팝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K팝 역시 그야말로 '음악의 국적'을 표기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므로.


그러나 일견 당혹스러운 부분은 바로 그 K라는 글자의 과용에서 시작한다. 김밥의 유행을 두고 K푸드의 열풍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옆나라 일본으로 그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미국 등지에서 초밥을 점심으로 많이들 먹는다하여 이를 두고 'J푸드 열풍'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이 싫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미국에서 크나큰 성공을 거둔 아르메니아 출신의 헤비메탈 밴드 System of a Down의 노래 중에는 아예 <Chop Suey!>가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C푸드의 열풍'이라고 부르던가.


진정한 강자는 자신의 강함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장 우리의 속담 중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그 염원은 이해하나 미국 작품의 성공을 두고 뿌듯해하는 미디어와 대중의 모습은 조금 보기 민망하다. 마치 그동안 인정받지 못 했던 인물이 한 번의 성공의 기쁨에 겨워 동네를 뛰어다니며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것을 보는 모습이랄까. 그 모습의 근원이 보편적으로 '컴플렉스'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경계해야만 할 태도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을 다룬 미국 작품’의 흥행 앞에서 과도한 자부심을 호출한다. 이는 문화적 자신감이라기보다, 아직도 외부의 인정에 의미를 의탁하려는 습관에 가깝다. 문화 강국을 꿈꾼다면, 이제는 묻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한국이 나왔는가’가 아니라, ‘굳이 그렇게까지 반응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그 기준으로 다시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미국 자본이 만든 그저 한국을 '소재'로 삼은 작품에 그렇게까지 열광을 해야 할 만큼 문화적 자존이 불안한 사회인가. 혹은 그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여전히 유효한 우리의 과제는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영화가 아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