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이라는 말이 너무 쉬워졌을 때>
영화의 짜임새를 논하기 이전에 <대홍수>(2025)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음은 인정해야만 하겠다. 그리고 우선은 이 소리를 하고프다. 작품을 향해 쏟아지는 적의가 어디로부터 기인하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불친절하고 관객의 기대를 저버렸으며, 감독에게는 전작의 실패로 비롯한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각각의 요소가 시너지를 일으켜 '역대 최악의 망작'이라는, '2025년 최악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수여되었다. 사실 이러한 평을 이미 접한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색안경이 씌워질 수 밖에 없으며, 내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각오를 동반해야 하므로.
우선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자 한다. 소재는 과연 어떠하였는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닥쳐온 대홍수라는 재난과 모성애, 사실 그다지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이다. 이것에서만 단순히 그쳤다고 한다면 영화를 최악의 망작이라 평하는 시선에 동의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영화는 하나의 소재를 더한다. 바로 '게임'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중 캐릭터가 사망하게 될 시에 최초로 돌아가 다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동안의 경험과 누적된 재화를 통해 캐릭터를 조금씩 강화해가며 클리어를 향해 나아가는 장르의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게이머들에게 소위 '로그라이크'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영화가 이를 영리하게 섞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라 대답하겠다. 분명 이 방식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도 않다. 말하자면 대체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기술력의 사회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신인류를 탄생시켜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영화는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는 못 한다. 더욱이 '대홍수'라는 이름을 아예 내걸고 진행하는 영화가 1시간 48분이라는 런닝타임에서 48분의 지점에서 대홍수로부터 탈출하는 서사가 1차적으로 끝나버린다고 한다면 이는 '재난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1차적 탈출이 끝난 이후에 관객은 그 앞서 언급한 로그라이크적인 서사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더욱이 SF와 게임이라는 최첨단적 이미지에 모성애를 입혀서 내러티브를 진행해나가겠다는 결정 역시 그다지 영리하다고 하지는 못할 일이다. '모성애는 위대하다.'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는 신성할 지 모르나, 기술적인 서사의 메인디쉬로 올리기에는 다소 고전적인 신파이다. 더욱이 왜 모성애인가 역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로그라이크의 문법에서 최후의 결전 이후 구원 혹은 보상을 얻는다는 서사는 일반적이다. 영화에서 해당 구원 혹은 보상은 분명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어째서 고전적인 남녀의 설화는 아닌 모성애를 택해야 하는가. 당장 성경만 해도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류로 기록이 되며, 단군 신화 역시 환웅과 웅녀의 결합으로 전개가 된다. 인류의 시원을 다루는 그 어떤 신화나 설화에서도 모자 관계를 그 기점으로 삼은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는 이 파격적인 예외를 선택하면서도, 그것이 왜 필연적이어야 했는지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데 끝내 실패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패의 포인트를 가졌기에 <대홍수>는 2025 최악의 망작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작이라고는 결코 부를 수 없다지만 확실히 '오물'은 아니다. 적어도 감독의 전작, <전지적 독자 시점>(2025)보다는 낫다는 것이 개인적인 관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엄마의 모습을 다소 신화적이고 절대적으로 묘사함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이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로그라이크라는 장르의 게임적 요소는 영화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영화는 48분에 1차적 재난 상황 탈출로 1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탈출의 결말은 아이와의 결별이다. 게임으로 바라본다면 1차 클리어를 하며 '베드엔딩'을 목격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적어도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장치들이 여럿 등장한다. 1차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구안나는 고난에 처한 여러 이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시간의 촉박함과 현실이라는 덫에 걸려 이들의 도움을 외면하고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게임으로 치면 1차 엔딩을 향해 움직이는 동안, 각종 서브 퀘스트들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분기 엔딩을 확인하기 위해, 즉, 베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을 맞이 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진행해가며 그 동안 해결하지 못 하고 지나쳤던 서브퀘스트들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는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 서브 퀘스트들이 조건이 되는 구조를 상기한다면 그와 일치하기도 한다.
더욱이 다회차로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차곡차곡 과거의 기억이 재화처럼 쌓여 게임의 진행을 수월하게 한다는 것 역시 로그라이크 게임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영화에 게임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감독은 생각 이상으로 충실하게 이를 도입하였으며, 오히려 게임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높아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이미 <엣지 오브 투머로우>(2014)와 같이 게임적 요소를 도입한 영화는 10년도 전에부터 이미 존재했다라 반문할 수는 있겠으나, 게임 중 특정 장르에 대한 요소를 이 이정도까지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는 사실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게임 그 자체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마인크래프트>(2025)와 같은 영화가 오히려 게임의 요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대홍수>는 실패작이라고 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작품을 향해 쏟아지는 그 서슬퍼런 적의는 작품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감독에 대한 처벌로 보인다. 불친절한 서사와 낡은 모성애라는 패착이 존재함은 분명하나, 로그라이크라는 이질적인 문법을 이토록 집요하고 충실하게 스크린에 이식하려 했던 시도마저 '오물'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될 수는 없다. '수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영화에 삐걱거리는 부분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게임적 세계관 안에서 논리적 완결성을 확보하려 분투한 흔적만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 영화를 '2025년 최악의 작품'으로 낙인찍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마주한 관객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게으른 방식의 거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