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2013) 이야기

<노란색 메뉴의 테이블을 향한 변론>

by 조성현

남자가 여자를 떠나간다. 제발 떠나지 말라며 훌쩍이며 붙잡는 여자의 애원을 뒤로 한 채 남자는 문을 벌컥 열고 떠나간다. 열쇠 구멍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이들의 딸은 다시 부리나케 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그가 그렇게 떠나간 이후, 그가 열고 나갔던 그 문은 삐걱거린다. 힘을 주어 밀어야만 잠기는 걸쇠의 구조는 그 둘의 관계를 은유하는 듯 하다. 이 어긋난 관계에서 여자는 완벽히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남자에게서는 별 달리 드러나지 않는 진득한 미련이 여자에게서 뚝뚝 흐른다.


딸은 남자의 여자친구와도 만나 그들과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 여자는 딸의 새로운 모자를 보며 누구의 모자냐 묻고, 딸은 자신의 새로운 모자라고 이야기한다. 여자와 딸은 식탁에 앉고, 이윽고 그 자리에서 대화가 피어난다. 딸은 대화 중 이런 질문을 한다.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사랑했어?' 열쇠구멍을 통해 바라보았던 시선과 마찬가지인, 한정된 아이의 시야로 묻는 질문일테다. 여자는 웃으면서 대답을 얼버무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오늘 메뉴들은 전부 노란색이구나.'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이다.


여자는 자신의 식탁 위에 올려진 노란색 메뉴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관객은 본다. 남자는 여자를 떠났고, 이미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고, 딸과 여자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이미 그의 마음에서는 일말의 미련이 없다. 애초에 마음이 완전히 옮겨간 남자에게 이 흔적을 바라는 것은 과하다. 하물며 새로운 여자친구를 두고도 바람을 피는 남자에게 딸의 엄마에게 보이는 미련의 편린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딸이 여자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질투는 즉, 이미 피어나버린, 그리고 시들지 않은 사랑의 증명이다. 사랑은 소유욕을 동반하며, 소유욕은 집착을 가져온다. 누군가 자신의 소유물에 손을 대려는 순간, 발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질투는 그 발끈하는 마음이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리고 이를 마음대로 내 손에서 쥐락펴락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동반되어 오는 부산물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이토록 길게 부연하는 이유는 이 땅의 모든 질투하는 이들을 변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탓이다.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시칠리아로 몸을 피신하고 있을 시기의 일이다. 아폴로니아에게 반한 마이클은 그녀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그와 담판을 짓는다. 처음에는 왠 이방인이 자신의 딸을 노린다는 말을 듣고 대노해서 몽둥이 찜질을 준비하던 아버지는 정작 마이클의 당당하고 남자다운 태도를 보고 화를 누그러뜨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이 미국 출신의 사위를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다른 모습이다. 아폴로니아가 그녀의 오빠와 대화를 하는 순간, 마이클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이 모습을 보며 아폴로니아의 아버지는 사위를 보며 흡족해한다.


아폴로니아의 아버지는 어째서 흡족하였는가. 질투를 느끼는 이는 강인한 소유욕을 가졌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강렬한 욕망은 반드시 보호욕구를 동반한다. 즉, 그 아버지는 느꼈을 것이다. 이 남자는 내 딸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 남자는 내 딸을 최선을 다해 지켜줄 것이다. 질투 그 이면의 뜨거운 사랑과 단단한 책임감을 뚫어본 것이리라. 여자가 느끼는 질투는 죄악이 아니다. 그녀에게 덮친 비극은 그 걸쇠와 같이 맞닿지 못한 마음인 것이고, 그로 인해 끌려나오는 질투를 억눌러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비극에 휩쓸렸을 뿐,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안쓰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변론을 남겨둔다. 누구나 시달려오는 그 보편적인 정서를 느껴온 모든 이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보낸다.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그 처절한 감정에 안녕을 건넨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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