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1999) 이야기

<종착역에서 기적이 울리면>

by 조성현

철마가 달린다.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증기를 내뿜으며 기적소리를 울린다. 새하얀 설원 위로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관차의 모습을 담던 프레임 위로 주인공 오토의 일생을 포착한 사진들이 오버랩된다. 여러 각도로 달리는 철마를 담던 시퀀스는 프레임이 전환되는 순간마다, 그리고 오토의 일생을 보여주는 사진이 지나쳐갈 때마다 시대에 따른 모습의 철마를 담아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빨간 전철의 모습으로 종착역, '호로마이'에 철마가 도착하고 주인공이자 호로마이의 역장인 오토가 이를 맞이한다.


사실 영화의 내러티브는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획기적이지는 않다. 혹은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을만큼 절절하지도 않다. 그저 한 인간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 인생의 '종착점'에서 작은 기적을 목도하는 정도에 그친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 영화에 획기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이 영화의 국적은 일본이다. 일본 특유의 제자리를 묵묵히, 그리고 무뚝뚝하게 지켜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것에 완전히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다소 기묘한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지니는 힘은 내러티브의 몰입감, 혹은 짙게 깔린 정서와는 다른 분야이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종착점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관객을 안내한다. 영화의 배경인 호로마이 역은 전철이 도착하는 종착점이다. 또한 짙게 내리는 눈은 1년의 마지막 겨울을 연상시킨다. 연상시키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명백히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시간적 배경이 겨울임을 명시한다. 더욱이, 영화의 주요 중추를 담당하는 사건은 곧 호로마이 선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역이 사라지는 순간, 역장 오토는 어떠한 운명을 마주해야 하는가를 두고 그 주변의 인물이 근심하는 것이 주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토록 집요하게 끝이라는 것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그러나 그 끝이 단순 소멸이라는 비극적이고 참담함으로 귀결된다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정적이고 미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 노력을 드러내는 장치로는 아무래도 색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흰 설원을 캔버스 삼아 그 위를 가로지르는 빨간 전철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부각한다. 흰 눈 위에 붉은 물체, 참으로 다양한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 아주 보편적인 미학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붉은 쇳덩이를 맞이하는 이는 검은 제복의 오토이다. 흰색과 붉은 색, 그리고 검은 색이라는 세 가지 색의 충돌은 호로마이라는 종착역을 하나의 의식을 위한 장으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색채로 벼리어낸 하나의 숭고한 종착의 장에서 오토가 목도하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그 무뚝뚝한 노년의 철도원이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 신생아 시절에 떠나버린 그의 딸이 등장한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 태어난 유키코라는 이름은 유키온나(설녀)를 연상시킨다. 그 지점에서 오토의 삶이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영화는 시사한다.


유령처럼 나타난 딸은 오토에게 눈물과 미소를 건넨다. 그것은 평생을 '깃발'과 '호루라기'라는 직업적 언어 뒤에 숨어 감정을 억눌러온 사내에게 건네는 뒤늦은 사과이자 화해이다. 기적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텅 빈 역사를 채우는 온기이다. 이제 역장의 모자를 벗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듯, 오토의 뻣뻣했던 어깨는 비로소 이완된다. 종착역은 이제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곳이 된다.


오토는 떠난다. 자신이 묵었던 그 호로마이에서 짧은 기적을 맞이하는 것을 끝으로 그 빨간 전철에 실려 떠나간다. 동료 센이 그의 몸을 운구하며 전철의 기적을 울린다. 그렇다. 기적(奇蹟)이 지나가고 울리는 기적(汽笛)으로 영화는 내러티브의 종착역에 정차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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