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을 배반하고,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카메라는 차량의 시선을 따라간다. 자동차는 구불구불한 터널을 지나 고가도로를 올라 도로로 들어선다. 차량이 어느 시가지의 도로에 들어선 순간, 카메라는 도로에서 비틀거리며 차도 한가운데를 걷는 알렉스를 비춰준다. 차는 그를 칠 뻔하다가 경적을 울리고는 비켜나간다. 이윽고, 알렉스를 지나쳐간 차량은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온 미셸을 칠 뻔하다가 역시 경적을 울리고는 지나친다. 그리고 이렇게 둘을 지나친 차량의 운전자가 누구인지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카메라는 밝히지 않는다.
그렇게 위태로운 차도의 위, 두 남녀는 처음으로 마주친다. 한 커플이 탄 차량이 도로에 쓰러진 알렉스의 발목을 짓이기고 지나가고, 이미 시력을 잃어가는 까닭에 한 쪽 눈을 가린 미셸은 발목이 망가진 알렉스를 바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주한다. 절름발이 남자와 외눈박이 여자가 조우하는 순간은 그토록 위험하고도 이미 결핍에 할퀴어진 상황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여기저기 망가지고 얼기설기 기워진 듯한 불안정한 퐁네프의 다리 위로 두 남녀가 사랑에 취한 장면을 분명 담아내지만, 전쟁터의 현장을 포착하는 르포 혹은, 핸드헬드 기법에서나 볼 법한 불안한 방식의 카메라 워크가 이어진다. 뿐만 아니다. 대뜸 군대의 행진을 잡아준다던가, 탱크가 시가지를 지나는 장면을 잡아주기도 한다. 얼핏 관객에게 있어 뜬금없이 느껴질 법한 시퀀스이다. 분명 영화는 가진 것없는, 그리고 남루한 행색의 길거리 생활을 하는 광란에 휩싸인 듯한 남녀의 사랑을 그 주제로 다룬다. 로맨스라기엔 카메라의 양태는 불가해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야말로 광란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어떨까. 거리 생활을 하는 두 남녀는 공사 중이라는 명목 하에 출입금지 구역으로 설정된 퐁네프에서 만난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손상된 퐁네프는 절름발이 남자, 외눈박이 여자의 모습 그 자체와도 닮아있다. 전쟁의 한복판, 모든 것이 손상된 그 현장의 한복판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처절하고, 자기비하적이며, 파괴적이고 집요하다. 뜨겁고도 실성한 듯한 광기가 흐르는 동시에 서로를 해치기도 하는 그 개념, 그야말로 전쟁이다.
술에 취한 그들이 작아진 모습으로 낄낄거리고 그들이 서있는 퐁네프 그 다리 위로 불꽃놀이의 파편들이 튈 때, 그들은 손을 잡고 가장 뜨거운 사랑의 실존을 확인한다. 사랑은 차가운 길바닥이 아닌 따스한 침대 위에서 피어난다며 일갈하던 한스는 틀렸다. 미셸은 '하늘이 하얗다.'라는 말을 던지고 알렉스는 '구름은 검다'라는 말로 받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명시적인 확인이 완료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합일이 성립하는 순간에 지켜보는 이들은 그 광란을 납득한다.
누군가에게 그들의 사랑은 한때의 철없는 소동으로 비춰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딘가 부딪히고 깨진, 부족한 이들의 집착으로 비춰질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그들은 어찌 되는가. 발목이 부러진 채 절뚝거리던 알렉스는 미셸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그녀를 찾는 포스터들을 불태운다. 시력을 잃어가던 미셸은 알렉스에게 집착하지만 자신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그토록 제각각 한 곳이 움푹 파여있던 남녀가 갈라서고 나자, 알렉스는 자신의 왼손 약지를 향해 총알을 쏘아버린다. 다시는 맹약을 하지 않을 수 있게끔.
아이러니하게도 재회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멀쩡하다. 미셸은 눈을 고쳤고, 알렉스는 더 이상 다리를 절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끔한 복구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공유했던 뜨거운 광기를 거세한 것처럼 보인다. '정상'의 범주로 돌아온 그들에게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위험한 차도가 아니지만, 동시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절박한 전장(戰場)도 아니다. 그리고 이토록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만났던 퐁네프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한다. 그 퐁네프 역시 공사가 모두 끝난 멀끔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은 재회의 순간 다시 광란으로 젖어들기를 택한다. 미셸이 알렉스에게 자신은 가봐야 해라고 말하는 순간, 알렉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물 속으로 침식한다. 그리고 다시 떠오른다. 미셸은 말한다. '르 아브르로 가주세요.' 분명 가보아야 한다 했던 그녀의 일정은 어느덧 사라져 있다. 상기해보면 미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언제나 이야기했으나, 자세한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의 도입부, 구태여 카메라가 알렉스와 미셸을 칠 뻔한 그 운전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는 프레임 바깥에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파리에 내버려둔 채 르 아브르로 향할 것이기에.
많은 이들이 영화의 로맨스를 꿈꾸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 퐁네프 다리 위의 광란을 동경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미셸과 알렉스의 그 회복 후의 재회라는 서사가 머나먼 이야기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결핍을 지닌 그는 마음 속에 대답만을 품고 내뱉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내일의 하늘이 변함없이 파랗다는 사실에 절망할 지 모른다. 그들을 생각하며 내 나름대로의 위로로 글을 닫는다.
창공 저 너머, 먹구름이 밀려오길 기다리는 그대들을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