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가 없어진 기분이에요

나를 잃어버린 엄마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by 앤희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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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아이둘을 키우는 독박육아 영은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 정리를 대충 마치고 나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신랑은 바쁜 일터에 묶여,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다.
그런 신랑이 안쓰러워서
‘당연히 내가 해야지’ 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집안일, 아이들 케어, 시댁 행사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해내고 있었다.


예전엔 신랑이 가끔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줬다.
요즘은 그냥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밥을 챙기고, 감정을 조율하고, 모든 걸 조용히 감당해 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날 점심 자리에서, 문득 올라왔다.


친구 셋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한 친구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었고,
한 친구는 여전히 사랑받는 아내로 살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여유롭게 골드미스로 살고 있었다.


나는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예전에 겪었던 일들 뿐이었다.
지금 내 삶에서,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없다는 게 미래의 기대하는, ‘나’가 없다는게

갑자기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했나 보다.
“나도… 그냥, 나로 살고 싶다.”

말을 꺼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돌아가는 길, 나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작은 문구점 하나에 들어섰다.
햇살이 잔잔히 드리운 그 공간에 따뜻한 음악과 조용한 공기가 흘렀다.

그곳은 희망을 파는 문구점, 앤희베르 였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는데,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차 한 잔을 내어주었다.

잠시 머뭇이다가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냥… 내가 없어진 기분이에요.”

앤희베르는 그 말을 한참 듣고 나서 이렇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영은 씨,많이 힘들죠?”

매일매일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하고, 남편 일도 챙기면서 이렇게까지 버텨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가끔은 숨이 막히고, 지치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외로움도 있었을 거예요.

그 모든 걸 묵묵히 감당해 온 영은 씨, 정말 존경스럽고 고마운 마음이에요.

영은 씨 그런데 그거 알아요?
영은 씨 친구들도 화려해 보여도 눈물 흘리는 날, 분명히 있어요.

그리고 또, 어느 누구에게는 영은 씨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부러울 수도 있는 거예요.우리가 각자 살아내는 모양은 다 다르고, 다 힘들죠.


근데 지금처럼 계속 다 잘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무너지는 건 항상 ‘자기 자신’이에요.

밥 한 끼 배달로 때워도 되고, 청소 하루 미뤄도 되고, 시댁 행사, 가끔 눈치껏 빠져도 돼요.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영은 씨예요.
그게 무너지면 아이들도, 남편도, 아무도 제대로 못 챙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하루에 조금이라도 영은 씨만의 시간을 꼭 가지세요.

조용한 카페에 앉아 고소한 커피 냄새 맡으며 노래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요. 그건 ‘사치’가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예요.


그리고요, 영은 씨는 절대 작아진 사람이 아니에요.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랜만에, 울컥하는 마음을 조용히 눌렀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전, 문구점 한쪽 진열대에 놓인 노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를 위한 작은 약속”


그 노트를 가방에 넣으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나를 조금 더 돌보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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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희베르의 노트

“나를 위한 작은 약속”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은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 나를 덜 미워하고 한 번쯤 안아주기로 했다.

✔️멋지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도 나는 살아내고 있으니까.

✔️자꾸 나를 미루지 말자. 나는 늘 마지막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은 아이의 엄마 말고, 남편의 아내 말고, 그냥 ‘나’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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