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잠시 멈췄어요.

by 앤희베르
예쁜 여자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는 모습 그려줘.jpg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한 서른여섯의 민정]


"괜찮은 결정이었을까?
진짜 내가 원했던 걸까?

사직서를 냈던 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조금만 더 참아볼 걸 그랬나?
아무 준비 없이 그만두는 건 너무 무모했나?
지금 이 공허함은… 자유의 기쁨일까, 막막함일까.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막상 회사를 나온 지금, 나다운 게 뭔지 모르겠다.


아침 9시. 출근하지 않는 평일이 처음엔 낯설고 좋았다.
밀린 잠도 자고, 커피도 여유 있게 마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마음이 불안해졌다. 시계가 오후를 가리킬 즈음이면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며, 내 인생이 멈춘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친구들은 “잘했어!” “용기 있다!”
말로는 응원했지만, 어느새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야?"
그 말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나는 뭘 하고 싶은지도,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다.


깜깜한 저녁 문구점은 환희 빛나고 있다 밖에서 그걸 지켜보고있는 여자 그려줘.jpg


그날도, 무작정 걷다가 작은 문구점 앞에서 발이 멈췄다.

은은한 불빛, 포근한 공기, 조용한 음악.
유리창 너머로 비친 그 공간은 왠지 모르게 ‘괜찮다’고 말해줄 것 같았다.

그곳은, 희망을 파는 문구점 앤희베르.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순간, 나를 향한 미소와 따뜻한 차 한 잔이 건네졌다.

잠시 머뭇이다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모르겠어요.
사직서까지는 썼는데, 그다음이 너무 막막해요.”


앤희베르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나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민정 씨,
지금 이 시간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잠시 멈춘 거예요. 회사에서 나왔다는 건

누군가가 그어준 선 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죠.

처음엔 불안하고 어색하고,

마치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근데요,
지금 그 막막함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예요.”

지금은 잠시 멈춰 선 시간이지만, 이건 단순한 ‘쉼’이 아니에요.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에요.”

“그동안 우리는 해야 할 일에 쫓기느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순간에 숨이 트이는지’
잊고 살았잖아요.


민정 씨, 하루에 딱 10분만이라도 사람들 말에서, 세상의 소음에서 조용히 벗어나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창문을 열고 바람이 얼굴에 닿는 느낌을 느껴보고,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입 안에 퍼지는 향을 음미해 보기도 하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틀어놓고 가만히 들어보기도 해 보세요.”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라, 민정 씨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매일 조금씩 쌓아보세요. 그 안에서 분명, 다음 걸음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조용히 들려올 거예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날까 봐, 입술을 꾹 눌렀다.


“빈 시간, 빈 공간, 그게 꼭 허무한 게 아니에요.
그 위에 민정 씨만의 문장을 새롭게 써 내려가면 돼요.


오늘은,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좋은 음악 하나 듣고,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건 사치가 아니라, 민정 씨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예요.”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전, 진열대에 놓인 노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흔들려도 괜찮은 나에게”

그 노트를 가방에 넣으며 나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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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희베르의 노트

“흔들려도 괜찮은 나에게”


✔️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하루도 내 삶의 일부다.
✔️ 멈춘 것 같아도, 나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 남들이 가진 것을 기준 삼지 말자.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 지금 불안한 건,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증거다.
✔️ 오늘 하루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 하나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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