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던 내가, 마음을 배우는 이야기”
나는 서울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에 다니는 민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 경시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늘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우리 민정이가 또 1등을 했습니다.”라는 말은 학교에서 익숙한 일상이었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러 반응이 있었다. 무심한 아이들도 있었고,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오직 공부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그렇게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 가장 큰 단점이 드러났다. 소통 능력. 나는 말수가 적고, 모든 것을 수치화하며 효율을 따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이나 ‘인간미’를 발휘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탓에 수차례 면접에서 떨어졌다. 화가 났다.
“아니,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왜 면접 자리에서 말이 서툴다고 떨어뜨리는 거야?”뒤늦게 후회했다. ‘면접 연습이라도 더 해둘 걸…’
여러 번의 낙방 끝에, 결국 내가 원했던 1·2·3순위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목에 회사 사원증을 걸고 부서로 안내받던 날, 나는 생각했다.
‘이제야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지는구나.’
하지만 그 목걸이는, 곧 내가 공부 잘하는 1%의 ‘노예’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나는 맡은 일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보고서 하나도 수치와 논리로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 방식으로 나는 3년을 다녔다.
그런데 터질게 터졌다. 나는 동료들과 협력하는 방식을 몰랐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차갑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자기 의견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민정 씨, 보고서 또 혼자 다 해버렸어요? 우리랑 상의도 안 하고…”
“팀플레이가 안 되네. 너무 독단적이야.”
그들의 뒷말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점심 식사 자리에도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면 묵살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내가 잘 해낸 성과조차도, 동료들은 인정하기보다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회사에 들어와서 일 잘하라고 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왜 다들 나를 싫어하는 거지?”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나의 완벽주의는 팀에게는 불편함이 되었고, 나의 고요함은 오해를 낳았다. 나는 어느새 회사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있었다. 점점 목에 걸린 사원증이 목을 죄어오는 듯했다.
이제는 팀장님도 나에게 묵직한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선배들의 자료조사, 작은 심부름에 불과했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용기를 내어 팀장님에게 물었다.
“왜 저에게는 이런 일만 주시는 거예요? 이건 계약직이나 갓 입사한 신입이 하는 일이잖아요.”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민정 씨. 내가 이력서 다 봤어요. 공부 잘한 것도 알고, 상이란 상은 다 받았더만요. 그런데 여기는 회사예요. 작은 사회라고요. 그렇게 혼자 다 해버리면, 남은 동료들은 뭐가 됩니까? 생각 좀 하세요.”
말을 마친 팀장님은 의자를 휙 돌려버렸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내가 지금까지 배운 건 사회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걸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들었다.
점심시간이면 구내식당에 앉아도, 맞은편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회의 시간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동료가 말을 끊었다.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이미 답정너처럼 정해진 허드렛일이 내 앞에 놓였다.
처음에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틀린 게 뭐지? 성과 내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는 사라지고, 무력감만 남았다.
나는 회사에서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원증은 여전히 목에 걸려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증표가 아니었다. 그저 숨 막히는 굴레일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았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표정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나는 공부 잘하는 민정이 아니라… 그냥,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민정일지도 몰라.’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는 고립감.
그날도 야근 후, 지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온몸이 축 처져 있었고, 머릿속은 여전히 팀장님의 말이 맴돌았다.
“여기는 회사예요. 작은 사회라고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문득 익숙하지 않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곳에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간판 위에 적힌 글자 “희망을 파는 문구점, 안희베르”.
별다른 기대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짙은 커피 향과 종이 냄새, 그리고 은은한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깥의 삭막한 공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그 순간, 편안한 미소를 띠며 누군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민정 씨. 오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오셨나요?”
앤희베르의 따뜻한 인사에 민정은 잠시 멈칫했다.
“마음이요…? 제 마음이라… 저도 모르겠어요.”
순간, 민정은 스스로 놀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르겠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답을 찾아냈고, 시간을 오래 쓰더라도 반드시 결론을 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모르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민정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앤희베르는 여전히 잔잔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민정 씨, 마음을 모를 때도 있어요.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죠.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리고 민정 씨가 잘하는 게 있잖아요.
수학 문제를 풀 때, 단 하나의 문제도 놓치지 않으려고 몇 시간이고 애써 고민했던 그 끈기.
이제는 그 힘을… ‘자신의 마음’을 향해 써보는 건 어떨까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소중한 거예요.
민정 씨는 이미 답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니까, 이제는 답이 아니라 ‘민정 씨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민정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혔다.
“민정 씨, 혼자서 다 해내는 게 익숙했죠. 늘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열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그렇다고 민정 씨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혼자 해내는 힘은 분명 귀한 능력이에요. 다만 이제는, 그 힘을 조금 나누어 써도 괜찮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민정 씨가 잘나서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민정 씨가 마음을 나누지 않으니 다가가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요. 민정 씨, 회사라는 건 성적을 매기는 교실이 아니라,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함께 걷는 작은 사회예요. 그러니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괜찮습니다.
민정 씨가 가진 빛을 혼자만 붙잡아두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보세요.
그때 비로소, 민정 씨도 다른 이들의 따뜻함을 받게 될 거예요.”
민정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변해보기로 생각했다.
잠깐의 위로가 나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 첫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항상 약점을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 살았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문구점을 나서기 전, 민정은 진열대에서 아까부터 눈길이 머물던 노트를 꺼냈다.
표지에는 잔잔하게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
“마음을 여는 노트.”
민정은 잠시 그 글귀를 바라보다가, 노트를 품에 안았다.
이 노트가 무슨 기적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처럼,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기록해 줄지도 모른다.
문구점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밤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오늘의 작은 변화가 언젠가 더 큰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미한 믿음이 생겼다.
마음을 여는 노트
✔ 마음을 열면, 세상이 들어오고 나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 혼자 해내는 힘도 빛나지만, 함께하는 힘은 더 오래갑니다.
✔ 닫힌 마음은 나를 지켜주지만, 열린 마음은 나를 자라나게 합니다.
✔ 오늘 한 걸음의 용기가 내일의 새로운 나를 만듭니다.
✔ 내 안의 작은 이야기를 꺼낼 때, 새로운 관계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