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포스트시즌을 라디오로 듣는 팬들이 다시 늘고 있다. 영상보다 느리지만 더 진한 감동을 전하는 라디오 중계는 여전히 야구 팬들의 가을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번 글에서는 한화의 플레이오프 여정을 귀로 따라가는 경험과, 라디오 중계가 주는 감정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자연스레 손이 라디오 다이얼로 향한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야구의 계절만큼은 라디오의 존재감이 다시금 빛난다. 특히 한화 이글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올해는 그 열기가 유난히 뜨겁다.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하는 팬이라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중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치 대전 한밭구장의 관중석 한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라디오는 영상보다 느리지만, 대신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계진의 목소리 톤, 순간의 숨소리, 그리고 ‘홈런입니다!’라는 외침이 전파를 타고 집 안을 가득 채울 때,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서사로 다가온다. 나 역시 올해는 출퇴근길마다 라디오를 켜두고 한화의 플레이오프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라디오 야구 중계에는 TV나 스트리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온기가 있다. 눈으로 보는 대신 귀로 듣는 경기이기에, 해설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풍경이 된다. 예를 들어 ‘좌익수가 뒤로 물러나며 공을 잡습니다’라는 말만으로도 우리는 잔디의 푸르름과 관중의 함성, 그리고 공이 떨어지는 순간의 긴장감을 함께 그릴 수 있다.
이 감각은 어쩌면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 집안 어른들이 들려주던 그 시절의 라디오 중계 기억과 맞닿아 있다. 그때는 TV가 없거나 케이블 중계가 끊겼을 때, 온 가족이 거실 한가운데 모여 작은 라디오 하나를 중심으로 경기를 들었다.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높이면, 그 속에는 구장의 열기와 선수들의 호흡이 살아 있었다. 그때부터 야구는 단지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가 아니라, 목소리로 전해지는 감정의 기록이 되었던 것이다.
올해 한화는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랐다. 팬들의 기대는 높았고, 방송사 역시 이들의 여정을 전하기 위해 특별 편성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라디오 채널에서는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주요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다. 각 지역별 주파수는 다르지만 ‘한화 경기 생중계’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전이나 충청권에서는 한화 중계가 더욱 생생하게 전해진다. 현지 스튜디오에서는 지역 팬들의 응원 사연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며, 라디오 특유의 참여형 방송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스마트폰 라디오 앱을 통해서도 전국 어디서든 동일한 방송을 들을 수 있다. 화면이 없는 대신 귀로 듣는 집중력 덕분에, 오히려 경기에 몰입하기 쉬운 것이 라디오 중계의 매력이다.
플레이오프는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한 타석, 한 투구가 승부를 좌우한다. 라디오 중계에서는 그 긴장감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해설자는 “지금 투수의 어깨가 조금 무겁게 보입니다”라고 말하고,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듣는 사람은 스스로 그 장면을 그려내며 경기에 참여한다.
나는 지난 경기에서 한화의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순간을 라디오로 들었다. 그때 들려온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주변이 모두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삼진!”이라는 단어가 터져 나올 때,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영상보다 훨씬 느리게 다가왔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오히려 더 컸다. 라디오는 여전히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진솔한 매체였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날로그적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라디오는 단순한 중계 도구가 아니라, 야구를 통해 세대와 감정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한화 팬이라면 알 것이다. 그들의 야구는 언제나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전하는 매체가 바로 라디오이다.
가을 야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라디오를 켜둘 생각이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혹은 집 안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듣는 한화의 중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중계진의 목소리를 통해 선수들의 숨소리와 관중의 환호가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 나는 다시금 한화의 오랜 팬으로 돌아간다.
라디오를 통해 듣는 야구는 단지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기억이며, 마음의 온도다. 한화 이글스가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지금, 수많은 팬들이 각자의 주파수에 맞춰 같은 경기를 듣고 있다. 누군가는 차 안에서, 누군가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집 거실에서.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순간에 호흡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의 힘이다. 보이지 않지만 연결되고, 느리지만 더 깊게 스며드는 소리의 예술. 올가을 한화의 플레이오프를 라디오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기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기억 속의 야구’를 다시 소환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소리가 끝날 무렵, 우리는 모두 같은 문장을 마음속에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