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디자인에서 옥색 변기가 떠올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한 시. 모니터의 따가운 불빛 아래서 나는 색상과의 씨름에 빠져 있었다. 링크 트리 하나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링크를 삽입하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지만 배경색 선택에 벌써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손가락은 마우스 패드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였고, 브라우저 탭엔 1980년대 빈티지 인테리어 사진, 영화 <Her>의 스틸컷, 팬톤 컬러 차트 등 온갖 레퍼런스가 어지럽게 열려 있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긍정적인 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껏 링크로 유입된 이들이 회전문처럼 페이지를 돌아나가지 않아야 한다.
그런 명확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민트와 핑크라는 조합에 꽂혀 버렸다. 촌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그 두 색이 내 따스함과 발랄한 개성을 완벽히 드러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80년대 미국 교외 지역 가정집의 키치한 인테리어에서 풍기는 어떤 아련함, 그리고 <Her> 포스터 속 테오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마젠타의 조화는 영화의 소재와 어울려 마치 디지털 시대의 낭만주의를 보는 듯한 감상을 들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않은 법.. ^.^;;
옥옥옥�
직접 조색한 민트와 핑크의 조합은 어찌 이리도 어색한가. 내 모니터는 눈이 아플 정도로 자극적인 색채 대비를 이루는 웹페이지로 가득 찼다. 민트색 컴포넌트는 마치 한국의 구축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옥색 변기를 연상케 했고, 다급히 채도를 낮춰 조색한 버건디는 <캐롤>의 우아함이 아닌 다라이의 우스움이 되었다.
고급스러운 색을 찾기 위해 영화 <캐롤>의 스틸컷을 찾았다. <캐롤>의 부드러운 붉은 색이 퍽 우아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우아함은 단순한 숫자 코드 이상의 노력임은 분명했다. 영화 속 붉은 색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혹자는 캐롤의 붉은 입술로 욕망을 드러낸다고 하고, 라이트 호텔 씬의 붉은 배경은 관계의 파국을 강렬하게 드러낸다고 평한다. 이런 평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헤인즈 감독은 붉은색을 극대화하기 위해 16mm 필름과 절제된 색감, 자글자글한 질감을 적극 활용하여 미묘한 감정선을 기술적인 접근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난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캐롤의 립 컬러를 추출하여 나의 컬러칩에 붙여넣었다. 그런데 이런 날로 먹기가 정량화된 디지털 세상에서도 통하지 않는 것이었던가. 분명 동일한 컬러 코드를 찍었지만 내가 디지털로 재현하려 한 색상 체계로 오리지널의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했다. 그렇다. 디지털은 완벽한 수치적 복제를 약속하지만 우리의 뇌는 아날로그의 미묘한 질감과, 텍스처와, 추억을 기억하기에 디지털에 결코 속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왜 내 디자인은 촌스럽고 <Her>과 천조국의 주택 인테리어는 Aesthetic한 것인가.
몇 분 동안 원인을 고민해 보니 약 세 가지 이유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색에 대한 문화적 해석의 다양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용달 블루, 다라이 레드, 옥색 변기 - 이런 밈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다. 이 색상들은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서민적인 문화 코드로 작용한다. 더구나 유행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는 과도하게 대비되는 색상 조합은 자칫 촌스러움의 상징이 되기 십상이다.
뉴모피즘(Neumorphism),글래스모피즘(Glassmorphism), 클레이모피즘(Claymorphism) 등의 디자인 트렌드는 그림자와 빛, 그리고 3D로 구현한 물성을 미묘히 조작하여 실제와 유사한 질감을 구현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디자인들이 초현실적이기에 끌리는 것이지 실제 물리 세계에 존재하는 촉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지금 보고 만지고 있는 이 순간의 물성을 구현하기에는 버거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X11 컬러 시스템의 아콰마린(#7FFFD4)이 서구에서는 청량한 바다와 하늘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색상일지라도 우리의 기억 속 옥색 변기의 잔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삼성 갤럭시의 버건디 색상이 아이폰16의 버건디 색상과 나란히 놓였을 때 왠지 모르게 다라이레드의 인상을 받는 것,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결국 문화적 기억이라는 녀석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문화적 맥락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인지하는 색감과 실제 물리적 세계의 색상 사이의 간극을 더욱 드러낸다. 가령 같은 빨강이라도 실크 치파오의 진홍색과 부직포의 붉은색은 질감과 빛의 반사에 따라 전혀 다른 아우라를 풍긴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색 재현은 더욱 복잡하다. 아무리 RGB, Adobe RGB, Display P3 등의 공고한 표준 웹 컬러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디지털 스크린은 자연계의 풍부하고 미묘한 색감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디지털 디바이스는 빛을 발산하는 반면, 물리적 세계의 색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니 그토록 많은 영화감독과 색채 전문가들이, 스크린 속 색감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특히 시대극은 디지털카메라의 지나치게 선명하고 매끈한 색감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려 빛바랜 듯한 빈티지 질감을 부여하는 것이 공식과도 같다. 영화 <캐롤>의 잊을 수 없는 붉은색이 그토록 고혹적으로 느껴졌던 이유, 그 이면에는 바로 이 디지털 기술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불완전함 속에 오롯이 깃든 아날로그적 감성이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덜 완벽한 색감이 주는 깊이와 울림은 그 어떤 최첨단 기술로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적인 영역인지도 모른다. 결국 기술은 쉼 없이 발전한다지만 인간의 문화적 경험과 심상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작동하는 법이다.
뭐, 예상하다시피 나는 내 링크 트리 디자인을 수정했다. 한국인의 정서적 반감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련됨을 잃지 않는,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잠자리에 드는 가운데에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세상의 팔레트보다 나의 색깔이 앞서다니 그저 아쉽지만 그럼에도 기다려보자는 마음이다. 언젠가는 나의 팔레트도 누군가의 무드 보드에 오르게 될 테니.
색은 절대적이지 않다. 색깔은 시간과 공간, 문화와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기에 내가 처음 선택한 색 조합 역시도 실패라기보다 단지 다른 문맥 속에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나의 괴랄했던 첫 조합이 새로운 복고로 재평가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남들이 촌스럽다고 하는 색깔에 끌리고, 유행하는 색 조합은 식상하게 느낄 것만 같다. 자의식과잉 이러나 저러나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주어진 규범을 비틀어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하는 것이다. 내가 진정 소화해야 할 색은 외부의 기준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사랑하는 색이 아닐까? 적어도 난 무엇이 되었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소화할 거다. 꺼-억.
덧, 그렇게 완성된 나의
링크트리는 다음과 같다.
놀러오세요!
*용어 설명
1) 웹 표준 색상 : 과거 브라우저와 운영체제마다 색깔 표현 방식이 달랐던 시절에 모든 환경에서 동일하게 표현될 수 있는 기술적으로 표준화된 색상을 규정함. 색상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기술적 표준으로 번역했다는 점에 시사점을 가짐. ex. X11
2) X11 컬러 시스템 : 1987년 MIT의 X Window System에서 처음 정의된 컬러 네이밍 표준으로, 웹 브라우저에서 일관되게 표현할 수 있는 216가지의 웹 안전 색상을 포함한다. 이는 'LightBlue', 'DarkRed'와 같은 직관적인 이름과 16진수 코드(예: #7FFFD4)를 매칭 시켜 개발자들이 쉽게 참조할 수 있게 만든 색상 표준화 시스템이다. 현재는 CSS 컬러 키워드의 기반이 되어 웹 디자인의 기본 색상 체계로 사용되고 있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