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을 낭만이라 착각했어요

by 동인천특급



화이트 노이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냉장고 모터 소리가 내 신경을 거스른다. 깨진 손톱 끝이 키보드의 키캡을 할퀴는 순간, 소름 끼치는 감촉이 등골 위로 올랐다. 본능적으로 손을 떼었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에겐 세상이 깨진 유리조각 같다. 소음은 고막을 찌르고, 빛은 망막을 태우며, 사소한 불편함은 털끝을 스치고 마침내 피부 깊숙이 찔러든다. 나의 신체는 외부자극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신경 섬유는 매 순간 그 자극을 받아내느라 하염없이 떨린다. 모든 것이 과도하게 증폭되어 나를 침식한다.


이런 날엔 창문 틈 새어드는 바람조차 적대적이다. 머리카락이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여김 없이 편의점에 들어간다. 잠시 후 귀에 들리는 초콜릿 포장지가 스치는 소리, 입안에서 녹는 달콤함, 그 순간만큼은 날 선 감각이 잠잠해지길 빌어본다. 달콤함을 위약 삼아 현실을 마비시키고픈 연약한 소망. 달콤함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즈음, 모든 게 너무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세상에서 나는 달아나고 말았다.


방 안에는 멈춰버린 시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는 이유로 오래전에 건전지를 빼 버렸다. 시간은 그저 멈춰버린 시계처럼 정지해 있었다. 노트북 화면만이 유일한 빛이었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댔지만 완성되는 문장들은 불안과 공허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광기 어린 몸부림을 창작의 열정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상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또 다른 도피 수단일 뿐이었다. 글쓰기는 단지 도피였다. 이러한 자기기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무너진 일상으로 이어졌다. 무절제함과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용은 나를 지배했다. 나는 모든 것에 예외를 허용했다. 규칙적인 생활은 지루함과 속박으로, 절제된 욕망은 두려움으로 치부했다. 결국 나는 무질서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현실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에는 14시간, 16시간… 끝없이 잠의 심연 속으로 침잠했다. 이불 안에 안전히 누운 현재보다 고통 없이 움직이는 가상의 꿈 안에서 나는 더 행복했다. 아니 덜 아팠다고 하자. 머리가 깨질 정도로 잠을 자고 나서도 꿈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발 일어나라며 스스로 깨어난 신체는 빗질조차 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뒤척인 수십 시간의 수면시간을 알리는 듯했다. 머릿결은 늙은 사자의 갈기처럼 볼품없이 늘어졌고, 구겨진 잠옷은 나의 무질서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히피펌을 했다. 아무리 뒹굴고 머리를 바닥에 비벼도 부스스함 그 자체로 매력이 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나의 낭만적인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나는 낭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위엄을 잃은 채 야만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갔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그것을 지탱하는 규율과 책임을 거부하는 삶.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명백한 야만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 계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커다란 백팩을 메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굴포천 옆을 지나가는데 ‘똥물’이라는 오명에 걸맞은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물과 곰팡이, 정화가 되긴 한 건지 사실을 알 수 없는 악취는 비위가 약한 나를 괴롭혔다. 들숨을 틀어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걸었다. 그런데 나만 똥물내음을 참을 수 없던 것은 아닌지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 나 이 동네가 처음인데 무슨 냄새가 이렇게 나는 거야?"

"여기 하천이 오염돼서 그런가 봐요."


나의 상냥함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생은 뭐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돌아다녀? 20대 중반이면 한창 일할 나이인데 졸업하고 이제까지 뭐 했어."


그의 오지랖 넓은 신상조사는 곧 동정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말은 굴포천의 악취와 함께 신경을 찔렀다. 썩은 물속에서 부패한 물고기 지느러미가 터지는 소리, 그의 혀끝에서 떨어지는 동정의 단어들.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사나..."


똘똘해 보이는 청년이라며 힘을 내라는 하이파이브를 제안한다. 당신이 만난 똘똘한 청년은 겨우 그의 오른 손바닥을 들어 간신히 당신에게 맞춰주고는 돌아 걸었다. 그러다 도서관에 가던 길을 멈춰 서고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토록 완벽한 은유가 존재하다니. 우리 동네 하천처럼 탁해져 가는 인생을 지나가던 젠틀 무뢰배가 코앞에서 증폭시키고 말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니 소금기 섞인 냄새가 밴다. 눈물은 언제부터 흘렸을까.



눈물이 스민 피부가 따가울 즈음에서야 보았다. 지금의 나는 친절의 대가로 아무개의 동정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 기준에서 실패자로 보일 정도로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몸속의 온 신경이 전율한다.



인정했다. 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즐거움을 좇았지만 그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었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과 절제가 필요함을 왜 몰랐을까. 나의 공식을 다시 써야 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아는 것이 자유다. 나는 무너진 질서를 되찾기로 했다.



나는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해야 했다. 하루의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고, 아침 식사를 지키고, 20분의 운동을 했다. 억지로 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라도 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방종을 행할 순 없다. 멈춰버린 시간을 되돌리고, 흐트러진 삶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제 하루를 마감하며 마주하는 노트북 화면은 더 이상 도피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무질서를 질서로 가꾼 이에게 주는 보상이다. 창밖으로 도시의 빛공해를 뚫고 별빛이 내 방까지 다가오는 밤이면 나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내일은 어떤 낭만적인 하루를 보낼까?"



야만의 그림자를 벗어던진 지금, 낭만은 허공을 가르는 수사가 아니다. 깨진 시계를 고치듯 톱니바퀴를 하나씩 맞추고 조각난 삶의 파편을 모아 붙인다. 조각을 모으는 손에 파편에 긁히고 생채기가 나고 피가 고여도 괜찮다. 매일 아침 시곗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야 알 것도 같다. 하나는 낭만이란 결코 도망과 회피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둘은 나는 낭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고통을 두려워했던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 셋, 그것들로부터의 탈피만이 야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낭만에 이르는 길이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서 도망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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