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대하는 나의 자세
오늘은 간병일기가 아닌 나의 사소한 생각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내용이 아주 중구난방일 예정이다.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나는 아빠가 아프다는 걸 주변에 잘 알리지 않았다.
굳이 동네방네 이야기 할 주제도 아니었거니와 나의 개인적인 일을 바깥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들이 몰랐으면 했다.
내가 나의 이러한 고민과 상황을 털어놓았을 때 후에 누군가는 분명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그런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몇 안 되는 친구가 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넌지시 질문을 했다.
"그럼 지금 우리는 불행한 걸까? "
아 오해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나온 질문이었고 우리 둘 중 누구도 이 질문을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내가 매우 깊게 고민을 하게 만든 질문임에는 확실하다.
일단 불행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면
불행
(不幸)
명사
1. 행복하지 아니함.
2. 행복하지 아니한 일. 또는 그런 운수. 불행을 겪다.
그럼 나는 정말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고민 끝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돈이라는 것과 연관 지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현대사회에서 돈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특히 이 치솟는 물가에 대항하며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내 어렸을 적 집안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은 우리를 부족함이라는 단어를 모르도록 키우셨다.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리를 들쳐업고 여행을 다녔다.
매년 대하철이 되면 대하를 먹으러 지방으로 달려갔고, 자식들이 커가면서 시간이 맞지 않으면 집에서라도 요리를 해서 먹었다. 하루는 아빠가 대하를 굽는다고 프라이팬을 새카맣게 태운건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어린 나이에 서서히 돈이라는 물질에 대한 개념을 확립해 나갈 때쯤 이런 생각을 해봤었다.
'우리는 돈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여행 가고 먹는데 돈을 써도 되는 건가?'
순진했던 나는 이 생각을 부모님께 곧이곧대로 물어봤었다. 내 말을 듣고 부모님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람마다 돈에 대한 생각은 다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이후로 돈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재정립할 수 있었다.
아빠가 아팠을 때 우리 가족은 아빠를 살리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누군가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지만 이 방법이 앞으로 살아갈 우리가 그 많은 돈을 쓰고도 후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은 얄팍해지는 통장과 지갑에 한 달을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외식 한 끼를 할 정도의 돈은 항상 마련하려고 한다.
이번 달에 월급을 받으면 가족들과 무엇을 먹으러 갈지 고민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
돈이 없는 현실에 불행하냐고 물어본다면
돈이 없는 건 맞지만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지금 돈이 없는 건 순전히 내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현실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내 선택에 후회하는 것이고 그건 곧 나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세상에 감사한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불행은 후회 속에서 온다. 그때 그렇게 말할걸, 그때 이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후회가 쌓이고 반복되면 그게 불행이 된다.
후회를 할지언정 그것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생각을 만드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감사일기, 감사의 명상 이런 것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후회보다는 감사함을 가지고 살자는 의미에서.
위에는 공자 맹자 마냥 거창하게 써댔지만 사실 그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 그렇지만 이런 시행착오가 있어야 나중에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불행이나 후회를 제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 친구에게 우리가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노라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용기 정도는 생긴 것 같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은 불행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궁금하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강은 없듯이, 똑같은 사람이라도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다르니까.
어쩌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법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