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예전에 사놓은 다트 과녁을 눈이 빨개져 눈물이 나올 때까지 노려본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남자..
줄리는 일 년 전 동생의 자살 사건을 맡은 형사 로미임을 이제야 기억한다..
정신이 없던 그때 자신에게 신경 써준 로미에게는 사실 정식으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친구 집이 근처라는 과묵하지만 따뜻한 로미 형사의 말..
줄리는 전에 고마웠다는 말과 미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머리까지 이불을 덮고 먼저 잠들어있는 h..
줄리는 깨끗이 씻은 수건을 가지고 그가 깨지 않게 이불속에서 몰래 손을 빼, 정성스레 상처를 닦고 그곳에 빨간약을 바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전에 동생 사건을 맡은 형사를 금방 편의점에서 만났다고 나중에 저녁이라도 대접하자고 말이다..
치료가 끝나면 놀래주려고 자는 척을 하며 따끔거리는 것을 참고 있던 h의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른다..
라나는 관악부 선배들이 무지하게 무섭고 지금도 힘들어 탈퇴를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몇 달만 있으면 3학년이 되기 때문 그만둘 수는 없다..
이제 자기가 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호른이 너무 좋다..
입학식 날 관악부 선배들이 신입생을 위해 연주해 준 'Wolfgang Amadeus Mozart' 곡 호른 소리에 매료되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관악부에 들어버렸다.. 처음 선배들에게 배울 땐 입술이 퉁퉁 부으며 연습한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텅 빈 연습실에서 홀로 호른을 불 때만큼은 모든 걸 잊어버리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라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요즘은 그 혼자만의 세상에 새로운 친구가 있어 더 기분이 좋다..
라나가 h를 처음 본 건 3개월 전
전국관악대회가 홍대에서 있던 날 금상을 타서, 선후배들과 간단하게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을 먹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홍대 사거리 신호등에서 버스카드를 잊어버려 찾던 라나에게 h는 먼저 말을 걸었다..
라나가 어리다는 것에 쉽게 말을 건지는 몰라도 잠깐 동안 얘기에, 그가 한 여자와 동거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라나는 그 뒤로 h와 이상한 친구처럼 관계를 가지며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만난다..
비록 새벽에 만나 잠깐 운동을 하는 정도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라나는 호른도 불어주고, 직접 만들어간 토스트도 딸기우유와 함께 먹는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일찍 아빠를 잃은 라나는, 어둡지만 마음속 어딘가 뭔가를 채워주는 h가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