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버지의 부고
마흔일곱,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흔 살이 될 때까지
친구는 아버지의 살아 계심에 감사했다.
봄에는 토마토를 박스째 사서
토종 꿀 넣어 갈고,
여름에는 찐 옥수수 한 알 한 알 떼어
통에 담아 출근길에 건넸다.
가을이면 청도에서 주문한 연시를 들고 가
선운사 꽃무릇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겨울이면 보일러 온도를 확인하는
친구의 출근길은 언제나 한 시간을 더했다.
부고 전날,
한 손에는 열아홉 손녀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오십인 딸의 손을 잡고
겨울밤, 한 이불 속에서 함께 날을 새웠다.
친구의 아버지는 말을 하려고 하면
자꾸 틀니가 빠졌다고 했다.
무슨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을까?
연줄처럼 춤추던 정신줄이 멈추던 밤
흰 눈이 하염없이 앞마당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