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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Aug 10. 2022

훈계와 간섭 사이

얼마 전 아파트서 담배 피우는 중학생들을 지적했더니 오히려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는 뉴스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4명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주민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훈계를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짝다리를 짚고 침을 뱉기도 했다고 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어느 선까지가 훈계인지, 간섭인지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그 뉴스를 보던 날 나는 중학생들의 행동에 열을 올리면서 욕을 했던 기억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단짝 친구와 나는 점심시간에 종종 학교 담벼락을 넘었다.

내가 다닐 때 담벼락만 넘으면 개간이 잘 된 논이 드 넓게 펼쳐졌었다(지금은 전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바람에 일렁이는 벼가 무릎만큼 올라와 논두렁에 앉으면 얼굴이 보일락 말락 하며 초록으로 우리도 같이 일렁이고 있었다.

손에는 떠먹는 요거트를 하나씩 들고 우리를 가장 잘 숨겨 줄 만한 논두렁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실어 스트레스를 같이 날려 보내는 시간이었다.


"야 이 들아~."

"..............?"

"야 이 들아~."

우리에게 하는 소리가 맞는 거 같았다.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건 저 멀리서 우릴 향해 작대기를 흔들면서 전력질주로 달려오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계셨는데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걸리적거렸는지 지게를 집어던졌다.

논두렁에 앉아 있는 게 그렇게 잘 못된 일인가? 점심시간에 학교 밖에 있는 게, 학교 담벼락을 넘은 것이 지게를 던지고 달려 올만큼 잘 못한 행동인가? 우리는 순간 두려움에 움찔하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야 이 계집아이들아~.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할아버지 저희한테 말씀하시는 거예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 겁도 없이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


담배? 우리가?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거리며 작대기와 함께 우리 앞에서 멈췄다.

"어른이 와도 담배를 물고 있는 거 보게나."

그 말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어이없어 웃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떠먹는 요거트를  다 먹고 입에 계속 물고 있던 일회용 흰 숟가락을 멀리서 보고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였다.

할아버지는 오해해서 미안하고, 학생들이 논두렁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고 안도의 한 숨을 쉬시고 지게를 가지러 가셨다.


그 뒤로 장마가 시작되었고 벼이삭이 나오면서 우리는 논두렁에 가지 않았지만 그날을 떠올리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뉴스를 접하고 그날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분명 그냥 지나쳐도 됐을 모르는 아이들인데 농부가 지게를 던지고 달려와 간섭이 아닌 훈계를 하려 했던 할아버지의 마음.


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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